2011/11/27 12:21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 나카노네 고만물상, 가와카미 히로미, 오유리 옮김, 은행나무, 2006
어느 날 부인이 안으로 들어선 것은 판유리벽을 통해 [장미빛 누드]를 보았기 때문이다. 코트 걸이 위에, 흔히 젊은 여자 모델의 오만한 잿빛 시선이나 광기가 번득이는 듯한 까만 눈동자와 마주칠 법한 곳에,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풍만한 알몸을 육감적으로 곱게 내뻗은 여인의 누드가 걸려 있는 것이 참 이상하다고 부인은 생각했다. 요즘은 완숙한 여인을 표현한 그림이나 사진은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젊은 여자들 모습뿐인데 말이다. 장미빛 나부(裸婦)는 아주 단조로운 색감으로 그러졌는데도 양감이 있었다. 커다란 궁둥이, 슬며시 들어올린 당당한 한쪽 무릎. 둥글게 솟아오른 젖가슴은 원(圓)에 대한 명상과, 육체와 그 육체의 쇠락에 대한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 '메두사의 발목', [마티스·스토리], A. S. 바이어트, 윤희기 옮김, 프레스21, 1997
나는 여기에 이렇게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여기는 내 방이고, 대략 2만 권의 책과 갈색 수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고양이 이름은 '365일의 반찬 백과'이다.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다카하시 겐이치로, 박혜성 옮김, 웅진출판, 1995
해마다, 1년에 두 번씩 '수시아(sucia)'들이 나타난다. 나, 엘리자베스, 사라, 레베카, 우스내비스, 그리고 앰버다. 세계 어느 곳에 있든 - 우리는 많이 돌아다닌다 -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어떻게든 보스턴으로 돌아와서, 하룻밤 먹고 마시고(마시는 건 내 특기다) 수다를 떤다.
- 서른 살의 다이어리, 알리사 발데스 로드리게즈, 이현정 옮김, 시공사, 2005
전 고교 교사 고사카 히토미 씨가 2월 14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향년 68세.
- 학문, 야마다 에이미, 이규원 옮김, 작가정신, 2010
마치 앉아서 춤을 추는 것만 같다. 당기고 찍고 풀고 돌리고, 왼손 오른발 왼손 오른손, 모든 것이 완벽한 순서와 리듬에 따라 진행된다. 내 손이 끈적끈적한 고무 재질로 싸인 스로틀을 뒤쪽으로 비틀때마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628파운드에 130마력까지 신제품, BMW K1200 오토바이는 마치 채찍을 맞은 경주마처럼 앞으로 돌진한다.
- 비치하우스, 제임스 패터슨 & 페테 드 종주, 이창식 옮김, 베텔스만, 2003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아줌마는 테이블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설탕 그릇을 끌어당겨 뚜껑을 열더니 '아.'하는 소리를 냈다.
- '낡은 부채', [자백], 노나미 아사, 이춘신 옮김, 서울문화사, 2011
11월의 끝무렵, 유달리 포근한 어느 날 아침 9시쯤, 페테르부르크-바르샤바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가 전속력으로 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공기는 축축하고 안개가 짙게 낀 날이었기 떄문에 이제야 겨우 날이 밝아오는 듯싶었다. 그러나 차창을 통해서는 아직 선로의 좌우 열 걸음 안팎까지 밖에는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승객들 가운데는 외국에서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리 멀지 않은 데서 탄 신분이 낮은 장사꾼들이 많았는데, 특히 그들이 많이 타고 있는 3등 객실은 훨씬 더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런 경우 흔히 그러듯이 승객들은 모두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하룻밤 사이에 부석해진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고, 뱃속까지 얼어붙은 듯이 모두 꼼짝들 않고 앉아 있었다. 어느 얼굴이나 안개처럼 창백하거나 누렇게 떠 있었다.
- 벡치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박형규 옮김, 범우사, 1992
도모요세 아키오는 언제나처럼 나른한 한낮의 졸음 속에서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었다.
- 카후를 기다리며, 하라다 마하, 오근영 옮김, 스튜디오본프리, 2007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찢겨진 솜 같은 눈송이가 허공에서 휘날리다가 목적도 없이 아무 데나 떨어지곤 했다. 길 양쪽 담장 밑에는 눈이 제법 쌓여 질척거리는 복판 길 양쪽에 마치 하얗고 넓은 장식천을 드리운 것 같았다.
- 가 1, 바진, 박난영 옮김, 황소자리, 2006
만약 당신이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펴 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은 불행한 사건으로 시작될뿐더러, 결말 역시 해피 엔딩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중간 행복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이 헤쳐나가야 할 일들은 행복과는 영 거리가 멀다. 바이올렛, 클로스, 그리고 서니. 보클레어 집안의 세 남매는 귀엽고 영리하며 뛰어난 재주꾼들이었지만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불행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안됐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 위험한대결-눈동자의 집, 레모니 스니켓, 한지희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2002
케셀바흐 씨는 거실 문턱에 멈칫 멈춰 선 채 비서의 팔뚝을 덥석 붙잡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 813의 비밀, 모리스 르블랑, 성귀수 옮김, 까치, 2002
스카일러와 줄리아는 주위를 살피며 빅하우스 지하 출입문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후텁지근한 공기를 헤치고 한줄기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한때 진입로였단 길에 아치 모양으로 버티고 선 늙은 떡갈나무 가지의 겨우살이가 살짝 흔들렸다.
- 암호인간 1, 존 단턴, 안진환 옮김, 이야기, 2001
5년 전 북부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바르가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다가 그의 이웃에 사는 잔카를로 툴라(본명이 아니다)라는 사내를 만났다. 땅딸막하가 못해 뚱뚱해 보이는 몸집에 헝클어진 잿빛 머리 그리고 온통 이가 누런 잔카를로는, 자신을 모험을 좋아하는 집시 예술가 가족 사이에서 태어난 불가리아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기 가족은 전 세계를 여행했으며, 미국의 유명한 <에드 설리번 쇼>애 두 번이나 출연했고, 자신은 세인트아모리 69번지에서 벌일 공연 광고를 위해 월 스트리트에서 눈을 가린 채 지상 30층 높이에서 줄타기도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심한 치통 때문에 정신을 잃고 떨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다리가 세 군데나 부러졌다고 떠벌렸다.
- 시식시종, 우고 디폰테 지음, 피터 엘블링 영역, 서현정 옮김, 베텔스만, 2003
"안녕, 루크? 행운을 빌어!"
- 나이트메어룸2-13번 사물함, R. L. 스타인, 이창식 옮김, 시공주니어,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