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상영회"를 보고
2007/01/07 16:57
아래 글에 이어서 1995년 07월에 썼던 글입니다. 역시 옮기면서 고칠 부분이 많구나 ㅡ.ㅡ 했지만 그대로 적어 봅니다. ^^
"독립영화 상영회"를 보고
... 관객의 입장에서는 때로는 획일화된 대중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현실의 위안물이 아닌 현실에 대한 자각의 출발점으로서의 영화, 꿈속에서나 이루어질 환상이 아닌 우리 주변의 진지한 소묘로서의 영화를 대하고 싶었습니다. ...
"독립영화 상영회를 개최하며" 중에서
지난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YMCA강당에서 "독립영화 상영회"가 있었다. 모두 10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는데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90년대의 작품으로 올해 제작된 것도 두 편이나 되어서 달라졌다고 하는 독립영화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흔히 우리가 독립영화라는 말을 대하면 소자본, 열악한 제작환경, 사회개혁의 도구라는 말들을 생각하게 되고 작품으로는 [파업전야]나 [닫힌 교문을 열며]를 떠올린다. 뚜렷한 목표가 있던 80년대의 영화들이다. 제작여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열악하지만 "다양성"이라는 측면의 강조가 두드러지고 있는 90년대의 사회 상황은 이런 독립영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디어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그린 [미디어 숲속의 사람들], 농어촌 국민학교 통폐합에 의해 폐교소식을 접한 주민들의 법적 투쟁과 그 삶을 그린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소외 받는 이들 중 도시 부랑자 - 지하보도를 오르다 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술자리에도 가끔씩 껌과 초콜릿으로 얼굴을 내미는 - 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삶을 서술한 [우리는 전사(戰士)가 아니다], 신문으로만 접하던 네팔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못다한 이야기], 서툴지만 고등학생들이 직접 만든 [우울한 종례시간], 한국학생운동사를 정리한 [저물어 가는 1989년]... 이들 영화 중 세편을 살펴봄으로써 90년대 독립영화의 윤곽을 알 수 있었다.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제도권적 영화였다. 깔끔한 비쥬얼의 처리와 구성은 여느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치밀한 주제의식과 철저한 객관성은 교육에 대한 생각과 '스스로 한다'는 '자치'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즉 도구라는 측면에서 독립영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는 영화를 짐작할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는 집요한 추적을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2명의 부랑자의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흔히 책에서 많이 보아오던 구절인 "현대인의 소외"나 "중심부가 아닌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실제로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열악한 사운드나 화질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만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우울한 종례시간]은 결코 뛰어난 작품은 아니었다. 기술적인 측면이나 구성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어설프다는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우리는 또다른 독입영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디어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신자가 곧 송신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생이 이 정도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더 잘만들 수 있겠죠?"라고.
하지만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가 있는 가장 큰 존재이유 중에 하나인 '대중에게 보여지는 영화'의 면에서 이번 상영화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소수만이 자리를 찾았을 뿐이었다. 배급망의 부재와 검열거부로 인해 극장상영이 불가한 현상황에서, 같은 상황이지만 30만이 보았다는 [파업전야]만을 떠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생활과 삶을 그리고 있기에 더욱 친숙해야할 이런 영화들이 오히려 더 우리와 멀다는 생각에서 회의가 일기도 했지만, 그렇게 때문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으까 한다.
무언가 다른 것이 재미있다면,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이 재미있는 일이라면, 또 변하는 것이 곧 재미라면, 독립영화를 만드는 것은 분명 재미있는 일이며, 그것을 보는 것 또한 그러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p.s. [시작하는 순간 - 두밀리 두번째 이야기]라는 글이 있어 링크를 걸어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