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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종말 | 로버트 풀러

flipside 2023. 5. 28. 19:51

2004/11/20 11:51

 

[책을 읽고 나서]


언뜻보면 양장본에 학술적이며 골치아픈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짐작할지 모르지만 - 제목 역시 딱딱하다 [신분의 종말] - 조금만 읽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의 주장 - 노바디와 섬바디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누구나 노바디도 섬바디도 될 수 있다 - 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바디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섬바디는 특별하고 유명한 사람을 뜻한다. 한국어판의 부제인 "'특별한 자'와 '아무것도 아닌 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바로 이러한 노바디와 섬바디라는 신분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을 잘 요약하고 있다.


이 책은 신분주의란 무엇인가? 신분주의가 어떤 폐해가 있는가? 이토록 심각한 신분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은 무엇인가? 를 차근차근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결론에 접근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어렵지 않고 무척이나 친절하면서 세련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결말부분에 예로 들고 있는 "멸시의 해부"라는 장에서 가정과 건강(의사-환자), 노동, 교육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노바디에 대한 멸시와 무시의 구조를 해부하고 대안을 제시한 부분이 가장 탁월하다는 생각인데 특히 교육부분은 저자가 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경험을 고려할 때 파격적이며 가슴에 와 닿는다.


올해 읽은 가장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으로 취향을 가릴 것 없이 추천한다. 특히 책 말미에 열거하고 있는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은 이 책이 딛고 있는 뿌리가 단단하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주었는데 따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책 만듬새나 번역도 매끄럽다.



[기억에 남는 구절]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혹은 노바디라고 생각한다면 폭력이나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우려가 생긴다. 인류의 모든 역사를 통해 (자기 자신이 섬바디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참을 수 없는 욕구는) 수많은 광기와 폭력 행위의 숨겨진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 존 파울즈[John Fowles]의 인터뷰 내용 재인용



[서지정보]


제목 : 신분의 종말 : 특별한 자와 아무것도 아닌 자의 경계를 넘어서
지은이 : 로버트 풀러 Robert W. Fuller
옮긴이 : 안종설
원제 : Somebodies and Nobodies : Overcoming the Abuse of Rank (2003)
출판사 : 열대림
발간일 : 2004년 09월
분량 : 331쪽
값 : 16,500원


[p.s.]


- 번역본의 표지는 깔끔하기는 하지만 원저의 표지가 책 내용을 더 잘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 본문에 1999년 콜로라도 주 리틀턴의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 "콜룸빈"이라고 옮기는 것과 미국의 아동문학가 닥터 수스(Doctor Seuss, 본명 Theodore Seuss Geisel)를 "세우스"로 옮기고 있는데 워낙 "컬럼바인"이나 "수스"로 잘 알려져 있는 점을 고려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표기법을 떠나서 관용적인 사용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 책의 다른 만듬새에 비해 색인은 부족한 편인데 그냥 일반색인이 아니라 인명색인을 하는 것이 더 좋았을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