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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이미지의 역사 | 볼프강 벤츠

flipside 2023. 5. 29. 11:55

2005/07/28 00:07

 

[책을 읽고 나서]


최근 다음이나 엠파스에도 서비스되기 시작한 [브리태니커세계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반유대주의 anti-Semitism" 란 "인종적·종교적·경제적인 이유에서 유대인을 배척·절멸시키려는 사상. Hostility toward or discrimination against Jews as a religious group or “race.”"을 말한다. 어떤 한 인종에 대한 절멸이 한 사상으로 굳어져 있고 그 근원 또한 깊다는 사실은 참 무서운 일이다. 우리나라처럼 단일한 인종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사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겪고 있는 유형무형의 차별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우리 사회가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면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마 여러 소수자들 가운데 유대인들은 가장 주목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 따라서 잘못 알려져 있는 부분도 많은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일반인들이 이미지에 대한 종합적인 개론서인 볼프강 벤츠의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를 읽다보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이후 유대인들은 이제 잘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별 근거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들은 여전히 매부리코나 머리가 벗겨진 수전노로 돈을 밝히고 셈이 빠르며, 세계 음모론의 주도자로도 활동하며, 모든 국가의 막후에서 권력을 쥐고 있으며, 자기가 속해있는 국가를 전복시키려 하고 언젠가는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단순화는 말 그대로 근거가 없지만 너무나 오랜 역사와 잘못된 소문이 쌓이고, 선전 선동이 진행되었기에 거의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 책의 각주를 보다보면 유대인의 인신제물 공양에 희생되어(희생되었다고 알려진... 대부분 유대인에게 혐의를 씌운 것) 성인에 반열에 오른 어린이와 청소년 이야기를 볼 수 있는데 이들에 대한 성인 취소가 20세기가 되어서 이루어진 것을 보면 1945년 이후에도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나 그들이 처한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짐작케 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안네의 일기]의 의미를 평가한 부분인 "안네 프랑크의 신화"라는 장인데 기본적인 사실조차 몰랐던 탓에 매우 놀라웠다.(우선 안네는 일기를 네덜란드어로 썼었단다. 난 안네 프랑크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피신해 있었던 것도 몰랐다.--;) 따라서 [안네의 일기]에는 히틀러 치하 독일이나 폴란드에서 있었던 홀로코스트의 학살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책을 "안심"하고 읽게 되고, 그것을 통해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실제와는 다소 어긋한 인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벤츠는 이에 대한 근거로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안네 프랑크와 비슷한 처지에서 작성된 여러 저작물들이 그 생생한 강압적인 현실 묘사로 인해서 인간 승리와 성장일기적인 성격이 강한 [안네의 일기]에 밀려 잊혀진 사실을 이야기 한다. TV에 수술장면만 나와도 끔찍해서 채널을 돌리는 사람들의 심리를 생각하면 왜 [안네의 일기]가, 더 문학성이 있고 나치 치하 독일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다른 유대인 소년의 일기보다 훨씬 잘 팔리고 쉽게 받아들여졌는지 짐작이 된다.


이 외에도 현재 독일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수가 10만 명도 안된다는 사실, 폴란드의 반유대주의가 극심해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폴란드에서 살해된 유대인들의 수도 많다는 사실 - 같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라는 사실도 그 편견의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 점! - 이나, 스위스의 반유대주의 등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거나 짐작하지 못한 점도 많이 알려주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어 읽는 내내 흥미를 잃지 않았다. 무척이나 어려운 책일 것 같아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쉽게 잘 읽혀서 기뻤다. 좋은 내용을 쉽게 잘 설명해준 재주많은 저자에게 축복을 ^^


[서지정보]


제목 :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
지은이 : 볼프강 벤츠 Wolfgang Benz
옮긴이 : 윤용선
원제 : -
출판사 : 푸른역사
발간일 : 2005년 04월
분량 : 278쪽
값 : 13,000원


p.s. 미국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 회사에서 주최하는 회식/파티를 할 때 유대인이 있을 경우에는 그들을 위한 음식을 따로 주문하는 것이 일상적이라고 한다.


p.s. 이 책을 읽다 보면 유대인 역시 팔레스타인인 못지 않게 부당한 학대와 왜곡된 이미지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만화 [팔레스타인](조 사코)에 묘사된 이스라엘의 인권탄압 부분을 보다보면 이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왜곡된 이미지에 굴레를 쓰고 있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에 앞장서는 유대인의 모습은 하나로 묶여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