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진진묘>, 1970
2007. 7. 1. 23:04

장욱진, <진진묘>, 1970
... 많은 사람들은 장욱진의 <진진묘>를 장욱진의 아내 사랑의 하이라이트라고 칭한다. 장욱진은 평생 아내의 초상화를 두 점 그렸는데, 특히 첫번째 작품인 <진진묘>가 유명하다. '진진묘'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아내 이순경의 법명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슬프다. 그림 속의 이 '도인'이 이순경이라면 더 슬프다. 왜 이순경은 피가 끓고 살이 들뜨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도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했을까? 그림 속 도인은 피도 살도 모두 흙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마치 화석처럼 눈은 감겨지고 모든 동작은 정지해 있다.
이 그림은 전혀 '인간 이순경'답지 않다. 이것은 그의 실제 성품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실제로는 그야말로 활력이 넘치는 여성인데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장욱진은 모든 걸 제대로 본 것인지 모른다. 김형욱은 <진진묘>를 "육체를 걸러내고 나면 그런 모습의 진실만 남을 것이라는 화가의 간절한 믿음이 느껴지는 그림"이리고 평했다. 사물의 본질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장욱진이 그린 아내의 초상이라면 아마 이순경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일 터였다. 그렇다면 이순경은 인간에서 도인으로 변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이순경의 몸은 도인이 되었다.
평생 화가 남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노심초사 살았던 이순경의 도인적인 일생은 그야말로 기구했다. 한번은 이순경이 몸이 아파서 한의사에게 간 적이 있었다. 한의사는 맥을 짚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완 전 도인 맥이로구먼. 아주 참아서 참아서 콘크리트 바닥같습니다. 맥이 눌러붙어서 미동도 없어요. 이게 도인 맥이지 뭐요."
그제야 그는 '아. 내가 무섭게 참고 살았구나'라고 깨달았다. 그런데 그토록 경직되고 굳어 있던 그의 몸은 장욱진이 세상을 뜬 후 가장 먼저 반응했다. 남편의 사망 후 이순경은 또다른 일로 한의원에 들른 적이 있었다. 이때의 한의사가 맥을 짚어보더니 이게 웬일ㅇ냐머, "지금 새파란 청춘도 아닌데 맥이 들떴다"는 것이다. 내가 이순경을 만났을 때, 그는 "장선생이 세상을 뜬 후 미망인의 얼굴이 더 좋아져서 주위 사람 보기 창피했노라"고 쑥스럽게 털어놓았다. 항상 화가의 아내로 주변에 인식되었기에 그 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언제나 조심스러웠으리라.
미동도 없이 굳어 가라앉아버린 이순경의 몸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데 그 느낌을 남편도 느꼈던 모양이다. <진진묘>를 완성한 후 장욱진은 석 달 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그가 그토록 앓았던 것은 어쩌면 자신을 위해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해서가 아니었을까. ...
- 이미지 출처 :
http://book.daum.net/bookdetail/bookmediareview.do?bookid=KOR9788989004110
- 글 출처 : <화가의 빛이 된 아내> 중 "동심의 예술가를 사수했던 도인 - 장욱진의 아내 이순경"중에서, 정필주, 아트북스,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