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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줏빛 소파 | 조경란

flipside 2023. 5. 30. 00:32

2006/09/10 14:16

 

여기 저기 예전에 올렸던 글 이전 작업중. 2000년 12월 18일 작성


[책을 읽고 나서]


[식빵 굽는 시간]에서도 그랬고 [가족의 기원]에서도 그랬지만, 조경란의 소설을 읽는 것은 무척이나 편안하다. 지금까지 읽었던 많은 소설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재채기 한 번으로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언제나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든다.


책의 표지가 된 [나의 자줏빛 소파]는 조금 싸늘하기까지한 [유리 동물원]에 비하면 따뜻하지만 그래도 긴 여운을 남기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9편 중 2편이 주목을 끈 데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거북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한 쪽에서는 추위에 얼어죽고 다른 한 쪽에서는 버림받는 거북이라는 존재는 조경란 소설이 주는 시원한 느낌이 결코 그저 상쾌함이 아니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나 무언가에 얽매여 있다던가 자유롭지 못한 주인공들의 갈등에 이제 좀 지친 사람이라면, 버릇없어 보인다 싶게 세상사에서 조금 비껴 서고 싶은 사람이라면 조경란의 소설이 그 누구의 소설보다도 나와 닮아 있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구절]


양손에 사각 어항을 든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수족관 집 앞을 서성거리다가 셔터 밑 시멘트 바닥 위로 슬그머니 어항을 내려놓았습니다. 물이 출렁거리며 어항의 전으로 약간 흘러넘칩니다. 생혼(生魂)을 잃어버린 거북이는 이미 죽어버린 듯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머리까지 몸통으로 안으로 집어넣은 거북이는 한 개의 푸른 돌 같아 보입니다. 핏줄도 생명도 없는 돌멩이 말입니다. 미혹에 사로잡힌 것마냥 얼마쯤 더 그 자리에 움치고 앉아 있다가 자리를 떳는지 알 수 없습니다. 거북이는 눈을 뜨게 될까요?


[서지정보]


제목 : 나의 자줏빛 소파
지은이 : 조경란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발간일 : 2000년 05월
분량 : 327쪽
값 : 7,500원




p.s. 이렇게 예전에 쓴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정말 이 책을 읽었던가 -.-;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