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열정을 말하다 | 지승호
2007/01/28 20:52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보고 예전에 읽었던 - 지금 찾아보니 절판 되었다네요. - [한국의 영화 감독 13인](이효인, 열린책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처럼 인터뷰로만 구성된 책은 아니었지만 감독론과 영화분석, 인터뷰가 잘 어울러졌던 것으로 기억납니다.(곁가지 이야기지만 1994년 나온 책으로는 편집디자인도 이뻤어요 *_*) 개인적으로 지승호의 인터뷰집은 꼬박꼬박은 아니더라도 눈에띄면 찾아 읽는 편인데, 관심이 가는 영화감독과의 만남이고 감독들에 대한 이런 류의 책이 오랜만이라서 더 구미가 당겨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만난 영화감독은 김지운, 류승완, 변영주, 봉준호, 윤제균, 장준환, 조명남 7명으로 이효인의 책과는 달리 젊은 감독을 중심으로만 꾸려졌는데, 이전 지승호의 책에 비해서는 인터뷰이의 역량/호응도에 따라서 인터뷰의 편차가 좀 있습니다. 김지운 감독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탓에 인터뷰를 읽으면서 새로운 점을 많이 알게 되었고, 류승완 감독의 경우에는 호감이 있어서 그런지 인터뷰도 재미있더군요. 변영주 감독이나 장준환 감독의 인터뷰는 내용이나 방향, 답변면에서 다소 실망스러웠고, 윤제균, 조명남 감독의 경우도 역시 인터뷰가 확실히 형식적이라는 느낌을 주었지만 감독들의 답변이 성실해서 맘에 들었습니다.(그래서 아래 기억에 남는 구절에 옮겨봤습니다.) 가장 분량이 많았던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는 [괴물] 개봉 전에 이뤄진 것으로 [살인의 추억]과 [플란다스의 개]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뤄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영화감독에 대한 인터뷰이긴 하지만 스크린쿼터, 한미FTA를 둘러싼 질문이 모든 감독의 인터뷰에 빠짐없이 들어가 있으므로 영화전문서적이 아니라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의 [마주치다 눈뜨다](그린비)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못미친다는 생각이지만 저같이 완소봉(완전소중봉준호 ^^;;;)을 외치는 분과 한국영화감독들이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찍고 영화를 대하고,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고 싶은 분에게는 강하게 추천합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
봉준호 감독 인터뷰 중
지승호 : 박찬욱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찍었다면 마지막에 진범이 나오게 했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봉준호 : [날 보러 와요] 초고를 보여드렸을 때 모니터를 해주셨는데, "나 같으면 마지막에 박두만이 논에 가서 보는 것이 아니라 틱 모르는 남자가 나오는데, 그 남자가 범인다, 제목은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가 어떠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 이번 영화 중요해요. 그러지 좀 마세요"그랬죠.(웃음) [복수는 나의 것] 라스트에 대해서는 저한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라고 해서, {스포일러} 마지막에 배두나의 조직원이 나와서 송강호를 찔러 죽이잖아요. 그게 어떠냐고 해서 "죽여요. 복수의 절정이에요"라고 했더니 "진짜 좋은 거지. 알았어" 그러시더니 개봉하고 나중에 그 영화가 흥행이 잘 안 되고 나서 투자사에 있는 분이 "박 감독님이 봉준호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하던데"라고 하시더라구요, 박 감독님이 "봉준호 자기 영화라면 안 그랬을 거야. 남의 영화니까 막 말하고. 자기는 흥행되는 영화 찍잖아"라고 하셨죠.(웃음)
윤제균 감독 인터뷰 중
지승호 : 연출관이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윤제균 : 일단은 진정성이구요. 그건 놓치고 가고 싶지 않구요. 두 번째는 아직까지 영화는 꿈의 공장이라고 생각을 해요. 어릴 때 극장 안에서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오는 희열감. 이런 감정을 아직도 잃어버리고 싶지가 않구요. 그런 진정성을 가진 판타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는 판타지라고 생각을 하니까요. 연출을 하더라도 진정성을 가지되, 나름대로 영화라는 것이 관객들한테 주는 판타지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관객들에게 주고 싶은 거고. 세 번 째로 지루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은 영원히 가져가야 될 부분이구요.
[서지정보]
제목 : 감독, 열정을 말하다
지은이 : 지승호
출판사 : 수다
발간일 : 2006년 07월
분량 : 440쪽
값 : 16,000원
p.s. 윤제균 감독 인터뷰 보고 맘에 들어서 [1번가의 기적]은 챙겨보기로 했습니다. ^.^
p.s. 2-3명의 영화감독이 영화판만큼은 학력이나 연줄 이런 것이 아닌 실력으로만 좌우되는 곳이라는 말을 확신에 차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정말 사실인가요? 우리나라에 그런 판이 있다니~ *_*
p.s. 한 감독은 인터뷰 중에서 영화관에서 영화 안 본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문맥상 불법다운로드 받아서 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비디오나 DVD로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서도 영화관에서 보는 것 보다 열등한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조금 기분 상했습니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