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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와 오라이 | 황대권

flipside 2023. 6. 1. 21:56

2007/05/13 12:33

 

[책을 읽고 나서]


최근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는 일이 생겨서 ㅜㅜ 어학공부와 함께 뭔가 쉽게 공부를 해볼 수 있는 것이 없을 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 일본어와 관련된 책들을 찾다가 발견한 책입니다.(인터넷 서점의 분류는 대부분 에세이 쪽인데 일본어단어쪽으로 분류해도 좋을듯 합니다.) [야생초편지]를 냈던 작가의 책이라서 이미 널리 알려진 것 같은데 교도소에서 일본어 사전을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가며 발견한 "우리말로 알고 있었던 일본단어" 240개가 편지글 속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바리깡은 바리깡 에 마르 Bariquand et Marre라는 프랑스의 제작소 이름이라든지 무데뽀라는 말의 유래, 세무는 프랑스어 섀므와 chamois에서 유래했다는 등의 단어의 유래가 저자의 어린시절인 1960년대를 묘사한 풍경과 이물감 없이 잘 맞물려서 정리되어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에세이를 읽는 기쁨과 우리말 속의 일본어 찾기라는 2가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어 관심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길지만 개인적으로 저자가 보는 우리말 순화에 대한 구절을 인용해 봅니다. 저도 이 부분에 100%에 공감합니다.


"... 외래어일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우리말이 없고, 대중 속에서 어느 정도 역사성을 획득한 말은 적극적으로 살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우리말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어떤 이들은 외래어, 특히 일본말이라면 무조건 배척부터 해놓고 무리하게 우리말로 고쳐 사용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고쳐서 말이 더 아름다워지고 언어생활이 풍부해진다면 몰라도 없는 말을 억지로 고쳐서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흐르는 물과 같이 자연스러워야 할 언어생활을 곡해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비록 역사적으로 쓰라린 기억을 지니고 있는 이웃 나라의 말일지라도 우리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중에서 의미가 건전하고 아름다운 말은 얼마든지 수용하여 써도 좋다고 생각한다.
  원래 이 작업을 시작한 의도는 개인적으로 나의 언어생활에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의미였지만, 이렇게 작업이 세세한 부분까지 확대 진행되면서 언어의 일방적인 청산과 배제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일본만의 어원을 밝히면서 상대작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때때로 일본말에서도 번득이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이 싫다고 하여 그들이 이루어놓은 아룸다움마저 무조건 배척하는 건 지나친 국수주의가 아닐까. 내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건강성을 신뢰하고 또 그러한 상태를 유지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한 이웃 나라의 좋은 말을 마음속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하여 하등 책잡힐 일은 아니라고 본다. ..."


[서지정보]


제목 : 빠꾸와 오라이
지은이 : 황대권
출판사 : 도솔오두막
발간일 : 2007년 03월
분량 : 224쪽
값 : 9,800원




p.s. 책 블로그 : http://blog.naver.com/orai1993/


p.s. 저자가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으로 13년 2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이 편지를 썼다는 점 때문에 중간 중간에 드러나는 저자의 심경을 드러낸 대목들과 현재도 아마 떵떵거리며 잘 지내고 있을 관련자들의 모습이 겹치면서 책을 읽다가 울컥 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