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모에 | 기리노 나쓰오
2009/06/06 07:33
[책을 읽고 나서]
기리노 나츠오의 작품 중 지금까지 번역 출간된 소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라는 설명을 듣고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난 소감은 역시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남편과 갑자기 사별한 50대 전업주부의 이야기에 "일본판 '엄마가 뿔났다'"라는 광고문구가 기리노 나츠오 이야기속 주인공으로는 딱 떠오르지 않고 이야기 소재로도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불륜 상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충격받고, 자기 먹고살기에 바뻐서 염치를 잊은 아들과 냉담과 관심을 오가는 딸, 가까우면서도 먼 것 같은 친구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사람들과의 새로운 인연을 접하고 점점 변화해가는 도시코는 고독하다는 면에서 이전 작품의 주인공과 같고, 긴장을 잃지 않고 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 마지막 장이 마무리 등은 어디를 봐도 기니노 나츠오 소설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인가?" 할 정도로 유산을 둘러싸고 이기적이고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아들의 모습에 충격받고(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이 요즘 만날 수 있는 자식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코가 알게 되는 낯선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감탄하고 - 제4장의 제목이 '인생극장'인데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만 따로 떼어도 소설 한 권이 나올듯 합니다. 분량은 작지만 [그로테스크] 속에서 중국인 장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 또 소설이 점점 진행될 수록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도시코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공감이 느껴졌습니다. 주인공의 감정을 묘사한 여러 부분이 감탄스럽지만 후반부에 도시코가 남편의 불륜상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부분을 옮겨봤습니다.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과 동화되어 저도 모르게 화가나는 대목이었거든요.(물론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초반부의 아들과의 대화 부분. 저도 아들인데 ㅠㅠ) 바닥에 앉아 깨진 조각을 줍고 티슈로 바닥을 닦으며 자신이나 남편의 불륜 애인 모두 이긴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다시 맥이 탁 풀어졌습니다.
... 뒤로 갈수록 도시코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부당하다는 생각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이렇게 참고 있는데 왜 알아주지 않는 것인가. 그렇게나 다카유키와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자랑하고 싶은 것인가. 순간 도시코는 테이블 가운데에 있던 작은 질그릇 꽃병을 집어서 안에 든 도라지꽃째 바닥에 내던졌다. 반들반들한 나무 바닥에 도자기 파편과 물과 꽃이 튄 것을 보고 도시코는 후회했다. 이 광경은 자신의 망막에 새겨져 평생 사라지지 않으리라.
"미안합니다. 변상하겠습니다."
도시코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후회가 되어 힘이 쭉 빠졌다. ...
기리노 나츠오 팬들이라면 당연히 좋아하실 것 같고 ^^ 처음 기리노 나츠오 소설을 접하시는 분들이라면 다른 작품보다는 좀더 편안하게 이 작가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했습니다. 번역본의 출간보다 영화개봉이 빨랐는데 소설을 읽고 봐야지 하다가 놓혔습니다. 영화도 꼭 챙겨보렵니다.
[서지정보]
제목 : 다마모에
원제 : 魂萌え! (2005)
지은이 : 기리노 나쓰오 저 [桐野夏生]
옮긴이 : 김수현
출판사 : 황금가지
발간일 : 2008년 12월
분량 : 556쪽
값 : 13,000원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