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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인터뷰

flipside 2023. 5. 9. 20:14

2005/02/0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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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 토론 못하시는 분들 얘기하시기는 그럴 거고, 토론 잘 하시는 분들은 어떤 분을 꼽으시겠습니까?


손석희 | 누구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라고 얘기했더니 지난 번에 이름이 오르내려가지고……. 그런데 이렇게 예기할 수 는 있어요. 논리가 매우 정교하고, 타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득이 안되는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논리는 좀 떨어지는 것 같은데 무척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누가 이기는가 하면 그건 자명한 거예요. 논리도 있고, 설득력도 있는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이 제일 좋은 거겠죠. 논리도 안 되고, 설득도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웃음) 굳이 나누자면 네 가지의 유형이 있어요.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은 논리적이기도 하고, 설득력도 있는 거겠죠. 다음 사람은 논리는 떨어지지만, 설득력이 있는 것이겠죠. 때로는 설득력이 없어도 논리가 출중한 사람에게 배우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대로 토론에서 유용성이 있다는 거죠. 다만 논리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사람은 큰 문제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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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 방송을 하시면서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셨던 적은 없으신가요?


손석희 | 그 부분을…….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것을 신경쓸 만큼 한가하지 못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아, 이 사람은 그것 때문에 고민했을 것이다'라고 얘기하더라구.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럴 만한 겨를이 없었어요. 그럴 만한 겨를이 있었다면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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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 최근에 돌아가신 정은임 아나운서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정은임 아나운서에 관해 특별히 기억나는 것들이 있으세요?


손석희 | 정은임씨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굉장히 많아요. 근데 안하죠. 저까지 나서서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 저한테는 많은 기억을 남겨준 친구에요. 그걸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면 좀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랄까 죽음으로써 사람을 참 슬프게 하는 친구죠. 노조도 같이 했어고요. 전 지금은 직급이 올라가는 바람에 조합원 아니지만, 미국에 있을 때도 그 친구는 시카고에 있었고, 저는 미네소타에 있어서(한 대여섯 시간 거린데)우리 집에도 왔었고, 나도 그 집에 갔었고, 노조에 있을 때는 노래패도 같이 했구요. 그 친구와 관련해서 지금도 몇 가지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어요. 문익환 목사 장례식에 같이 갔던 날, 서너 명이 같이 갔는데, 그때 눈이 많이 왔어요. 눈길 위로 그 친구가 또박또박 걸어갔던 기억이 나고... 체구가 조그마했거든요. 미국에서 정은임씨 부부가 우리집에 놀러 왔을 때 애들 쓰는 2층 침대를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자라고 줬는데, 침대에서 같이 자던 기억도 나고, 그때가 신혼 때였거든요. 신혼부부한테 따로 떨어져 자라고 한 게 말이 안 되는 거였죠(웃음). [FM 영화음악]을 그 친구가 95년도에 그만뒀었잖아요. 제가 보직부장할 때가 2002년도였는데, [FM 영화음악]을 그 친구가 다시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라디오 쪽하고도 얘기를 끝내고, 그 친구가 다시 하는 것으로 결정을 봤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굉장히 자존심이 강해요. 그런데 자기가 FM 영화음악에 다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손석희 아나운서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정은임이 손석희 덕을 보고 들어가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모양이에요. 당장 안한다고 하더라구요. 결국은 안 들어갔는데, 그때 저 나음대로 서운해 했죠. 그 친구가 그 이후로 제가 자신한테 굉장히 화가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2004년 1월호 [말]지 인터뷰를 보니까 그 얘기를 했더라구요. 손석희 아나운서하고 그 일 이후로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했는데, 전 그건 아니었거든요. 서운하긴 했지만, 그 부분을 풀어주지 못한 게 지금도 굉장히 미안해요. 그 친구하고는 기억할 거리들이 참 많은데, 그냥 다 풀어놓기 보다는 조용히 간직하고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군요.



[마주치다 눈뜨다 :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중에서, 지승호 편, 그린비, 2004




손석희씨는 1956년생. 우리나이로 올해 50이다. 15년만 있으면 우리도 멋진 원로를 한 명 갖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


p.s. 인터넷에 연재되던, 혹은 신문에 연재되던 글들이 책으로 묶여나왔을 때, 분명 이미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으로 읽을 때 더 집중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 이렇게라도 책의 유용성을 실감하게 될 때마다 안심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