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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바보구나

flipside 2023. 5. 10. 22:07

2006/03/25 13:03

 

... 바보구나, 라는 말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오다리기는 매번 나를 보고, 바보구나, 라고 말한다. 몇 번을 들어도 히나코는 그 말이 좋았다. 언제나 완벽한척 허세를 부리는 자신이 그 말 앞에서는 홍차에 각설탕 녹듯이 흐물흐물 무너지는 달콤한 기분이 든다. 어떤 의미에선, 귀엽다거나 예쁘다는 말과 같지 않을까, 하고 히나코는 생각한다. 좋아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좋아한다는 것은, 싫어하는 것도 포함하여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나도 좋아해라든지 잠깐만이라든지 하는 대답을 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바보구나, 하면 에이, 뭐가, 하며 바보처럼 웃고 있어도 된다. 보류해도 된다.


엑시트 뮤직에서 카운터를 사이에 둔 거리, 그것이 그와의 바른 거리라고 히나코는 생각했다. 떨어져도 안되고 붙어서도 안 된다. 소중한 기분이 언제나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처럼 놀고 있다. 딱 붙어서 질식시켜버리면 안된다.


그리고 하나코는 거리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중에서,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이토야마 아키코, 권남희 옮김, 작가정신, 2005




작가정신에서 계속 펴내고 있는 일본 소설 8번째 작품. 담백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소설을 영화화 할 때 오다기리 다카시를 오다기리 죠가 맡으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읽은 탓인지 더 재미있었다. ^^;; 개인적으로는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오다기리 다카시의 변명" 연작과 함께 수록된 "알리오 올리오"가 더 맘에 들었다.


p.s. 원서 표지. 국내판 표지도 멋지다



p.s. 이 책의 옮긴이이자 여러 일본소설의 번역자로 잘 알려진 권남희님의 사이트 : 사임당과 정하의 사이버 하우스 (정하는 권남희님 따님 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