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지혜라는 효모
2006/08/01 19:00
안드레 도이치사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그다지 슬프지 않았을까?
나는 원고 정리나 교열의 수준이 낮아지는 등 영국 출판계의 변화 조짐을 보면서 종종 고개를 젓기는 하지만, 원고 정리나 교열이 결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요즘 독서 시장은 먹을거리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어서 빠르고 쉽고 간단한 것, 설탕이나 식초처럼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맛에 대한 수요가 가장 높다. 하지만 불만이 많는 늙은 세대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런 현상이 죽음에 이르는 비극은 아니다. 게다가 새롭게 등장하는 현상도 아니다. 대중들은 예전부터 빠르고 쉬운 것을 원했으니까. 내 초창기 시절과 오늘날의 차이점은 대중의 욕구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욕구를 채우는 방식이 예전보다 훨씬 사치스러워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원인은 출판계가 특정 계급을 장악하는 능력이 약해지기 시작한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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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나는 베이커 가 근처 술집에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인류의 70퍼센트가 미개하고 30퍼센트는 지혜로운데 이 30퍼센트가 세상을 장악하지는 못하지만 세상이 잘 굴러가도록 대중을 발효시킬 수는 있을 거라고 말했다. 세태를 즉석에서 대충 평가한 발언에 불과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정확했다. 그가 말한 '지혜'는 단순한 지적 능력이 아니다. 이해하고, 다른 존재와 사물과 사건들 속에서 본질을 찾고, 그 본질을 존중하고 협동하고, 발견하고, 참아야 할 때 참고 즐기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공존하는 능력이다. 안타깝지만 인류는 조만간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거나 하늘을 떠다니는 물체와 충돌해 공룡처럼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지혜라는 효모는 그때까지 분명 제 몫을 다할 것이다.
비록 지혜라는 효모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다 하더라고 그것은(우리의 시각으로 보건대) 진화의 정점이 될 것이다. 심지어 나는 지혜라는 효모가 특정 행성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일반적인 법칙이며, 먼지에서 생명이 지표질 만한 물리적 환경(화학적인 환경이라고 해야하나?)이 조성된 곳이라면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 이름도 없으면 혼란스러울 테니 인류는 여기에 다양한 신의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나는 미미하기 짝이 없는 존재지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문을 읽더라도, 안드레의 야심찬 시도가 슬픈 결말을 맺더라도, 내 청춘의 상당 부분이 실연의 아픔으로 날아가 버렸어도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살아 있음을 즐긴다. ...
[그대로 두기 : 영국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 여성 편집자의 자서전] 저자의 말 중에서, 다이애나 애실, 이은선 옮김, 열린책들, 2006 (진하게는 제가)
지난 번에 이어 2번째 밑줄. 연륜이 느껴지는 저자의 말은 전체 다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로 따뜻하고 인상적이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 결코 헛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