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line

[밑줄] 물론 아이는 천사가 아니란 사실을 다들 안다

flipside 2023. 5. 12. 20:56

2006/12/16 19:49

 

  "교코, 아이는 좋아하니?" 나가다니가와씨가 물었다.
  "싫어해요."
  희한하게도 아이를 좋아한다는 여자는 착해보이고 아이를 싫어한다고 하면 심술 맞아 보인다. 물론 아이는 천사가 아니란 사실을 다들 안다. 지저분하고 거짓말 잘하고 제멋대로이고 멍청하고 성가시다. 나는? 나는 밉상스런 아이였다. 예를 들어 세뱃돈 대시 물건을 주면 받는 순간부터 의미도 없이 이 어른을 가장 실망시킬 만한 일이 무엇일까 궁리했다. 눈앞에서 장난감을 정원에 던지거나 부수거나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한 적은 없지만 언제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아이와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을 싫어한다. ...



"노동감사절"중에서, [바다에서 기다리다], 이토야마 아키코, 권남희 옮김, 북폴리오, 2006년




표제작인 "바다에서 기다리다"는 제13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품이지만 OO수상작이라면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단편으로 남녀 직장동료간의 우정이라는 미묘한 문제를 담백하게 그린 수작이다. 함께 수록된 "노동감사절"은 35세의 미혼/실업상태 여성 교코의 맞선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바다에서 기다리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이토야마 아키코의 소설을 보고 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재미있으니 꼭 읽으세요~"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사기치는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심심한 내용이었어요."라고 말해도 역시 거짓말하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찾아 읽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무심함과 기교없음, 심심함속의 재미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출판사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분량이 짧아서 서점에서 서서 읽을 수도 있으니, 조금 읽어보고 맞는다 싶은 분은 계속 읽으시길 ^^




p.s. 원서 표지랑 국내판 표지. 원서 표지의 사진 정말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