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알코올이나 포르말린이나 둘 다 독한 냄새가 똑같잖아요
2007/08/06 22:43
... "뭘 좀 먹어야겠소, 마우라. 하루 종일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영화 알아요? 꼬마애가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라고 말하는 영화?"
"[식스센스]."
"맞아요. 내 눈에는 항상 죽은 사람들이 보이죠. 그래서 죽은 사람들한테 진력이 났어요. 그것 때문에 항상 기분이 침울해 있는 거예요. 지금은 거의 크리스마스가 다 됐는데 트리를 준비할 생각도 안 하잖아요. 지금도 머릿속에선 부검실이 훤히 보여요. 손에서도 부검실 냄새가 난다고요. 이렇게 시체를 두 구나 보고 온 날에는 저녁 차릴 생각이 안 나요. 고기조각을 볼 때마다 근섬유가 떠오르거든요. 기껏해야 칵테일 한 잔 마시는 게 다죠. 게다가 술을 따르면 그 순간 다시 부검실로 돌아가요. 알코올 냄새 때문이죠. 알코올이나 포르말린이나 둘 다 독한 냄새가 똑같잖아요."
"당신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건 처음 듣는군."
"지금처럼 일에 압도당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무적의 아일스 박사는 어디 간 거요?"
"그렇지 않다는 거 알잖아요."
"연극하는 데는 도사지. 똑똑하고 빈틈없는 척. 당신, 대학에서 학생들을 얼마나 협박했는지 알아요? 당신이라면 다들 벌벌 떨어잖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죽은 자들의 여왕."
"그건 또 뭐요?"
"여기 경찰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요. 대놓고는 안 하지만 뒤에서 떠들어대는 소리가 다 들려요."
"그거 맘에 드는데. 죽은 자들의 여왕."
"나는 싫어요."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쿠션에 몸을 기댔다. 내가 무슨 뱀파이어라도 되는 것 같잖아요. 그로테스크한." ...
[파견의사] 중에서, 테스 게리첸,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 2007
출간순서에 신경쓰지 않고 읽다보니 이번에도 거꾸로 읽게 되었습니다. 테스 게리첸 책 중에 출간된 책이 [파견의사]까지 포함해서 3번째인데 2006년 06월에 [외과의사 The Surgeon]가 출간되었고, 올해 3월에 [견습의사 The Apprentice]가, 그리고 이 책이 7월에 나왔네요. 부검의 마우라 아일스 박사와 강력계 형사 제인 리졸리가 빚어내는 이야기는 스카페타, 마리노 형사 만큼이나 흥미로운데, 확실히 퍼트리샤 콘웰의 작품과는 다른 매력을 주고 있습니다. 골반 일괄절제술을 실시하는 검시장면, 쥐떼에 둘러쌓인 시체가 있는 풍경에 대한 묘사나 - 덜덜덜... [라따뚜이]를 봤지만 이런 장면 묘사는 끔찍해요 ㅠㅠ -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을 하나로 엮어내는 솜씨는 책 뒤표지를 채우고 있는 작가에 대해 찬사가 결코 광고만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의학 스릴러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게리첸의 다른 작품들도 웬지 찾아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
p.s. 제목을 통일시켜서 3부작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출판사의 노력이 이해는 가지만 [파견의사]라는 제목은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410쪽짜리 책에서 400쪽에 가서야 파견의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책 원제가 [The Sinner] 잖아요. 너무하삼 랜덤하우스
p.s. 원서표지와 국내판 표지. 개인적으로는 3번쨰 원서표지가 맘에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