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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멍청한 남자라도 좋으니까

flipside 2023. 5. 14. 11:06

2007/12/10 10:03

 

  "나도 남자가 날 생각해주는 경우보단 내가 그쪽을 더 생각하는 편이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남자가 날 잘 챙겨줄까? 내가 널 지켜줄게, 이렇게 말이야."
  "윽, 징그러워."
  치사가 과장되게 혀를 내밀어 보였다.
  "말로 하면 그렇긴 한데."
  모모타 씨는 한 입 남아 있던 치즈케이크를, 이거 나 먹어도 돼? 라고 말하며 입에 넣었다. 나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실연을 단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았다.
  "…… 멍청한 남자라도 좋으니까 누가 날 좀 아껴주는 그런 연앨 경험해보고 싶어. 넌 내가 없으면 안 돼, 그렇게."
  "우타는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짜증내잖아."
  어느새 친하게 지낸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치사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슬슬 전철을 타야겠다. 모모타 씨가 말했다. 우리는 테이블 위에 빈 컵들과 이것저것을 나누어 치웠다.
  "왠지 슬퍼지네."
  혼잣말처럼 말한 치사는 상점가의 밝은 빛이 반사하고 있는 약국의 셔터 문 앞에서 신나게 기타를 치고 있는 두 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앉아서 손뼉을 치고 있는 줄무늬 티셔츠 차림의 여자아이는 꿈을 꾸는 듯한 눈으로 왼쪽에 있는 남자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거리의 현재는]중에서, 시바사키 토모카, 김현희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시바사키 토모카는 영화 [오늘의 사건사고]의 원작자라고 하는데, 보통사람들의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에 대한 묘사가 매력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심심하다라고 하면 좀 낮게 보는 것 같고 담백하다고 보면 좀 좋게 보는 것 같은데, 저는 담백하다는 쪽에 한 표 던지려구요. :-)




p.s. 국내판 표지랑 원서표지. 둘 다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