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고양이는 다른 동물과는 달라요
2008/06/07 10:33
... 자기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자랑을 한바탕 늘어놓은 후, 야마자키는 초보자의 준수사항을 일러주듯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과는 달라요.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게 이니라, 인간을 지배하죠. 분명히 기르는 건 난데, 어느새 그렇게 돼버린다니까요. 집 안에 작은 왕이나 여왕을 모시고 사는 거죠. 아니, 권모술책으로 군림하는 라스푸틴이랄까. 누구에게 접근해야 자신에게 가장 득이 될지 꿰뚫는 것 같아요. 방해하는 자는 배제하려 들고, 자신의 영역을 제 편할 대로 구축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사악하다면 사악하다고 할 수 있지만, 뭐, 그게 매력이랄까 마력이라서. 말하자면……."
몹쓸 여자에게 골수까지 쭉쭉 빨아 먹힌 호색한 같은 표정으로 야마자키는 말했다.
"고양이는 사람에게 씌는 겁니다."
[벽장 속의 치요] "늙은 고양이"중에서, 오기와라 히로시, 신유희 옮김, 예담, 2007
오기와라 히로시 책 중 처음 읽게 된 소설. 단편 9편이 실려 있는데 뒷표지의 말처럼 "슬프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작품도 있고 - 표제작인 "벽장 속의 치요"에 딱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더군요 - 서술 트릭을 잘 사용한 작품("Call")도 있고, 블랙코미디 같은 단편("냉혹한 간병인")에 위에 밑줄 친 "늙은 고양이"처럼 다소 상투적이긴 하지만 환상특급 시리즈 느낌이 나는 소설도 담겨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머나 호러, 미스터리.. 어느 쪽으로 구분하기도 애매한 "어두운 나무 그늘"이라는 단편이 맘에 쏙 들었는데 제가 이런 소재(숨바꼭질하다 동생이 실종된 후 15년 만에 다시 그 곳을 방문한 언니 이야기)의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찾아보니 8권이나 출간되어 있던데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p.s. 국내표지, 원서표지, 국내표지가 훨씬 소설 내용을 잘 이야기 해주는 것 같네요. 원서표지 무섭삼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