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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요리에는 가장 맛있는 순간이라는 게 있어요

flipside 2023. 5. 15. 01:09

2008/06/14 12:00

 

  뱅상이 오르되브르를 날라 왔다.
  "푸아그라 소 브리오슈예요."
  하고 마담 푸앵이 말했다.
  설탕을 뺀 브리오슈를 식빵 모양으로 구워 가운데를 둥그렇게 파내고 부용을 굳힌 아스피크를 그 가장 바깥에 채우고, 다음에는 푸라그라를 채우고, 다시 푸아그라 가운데에 트뤼프를 채워 얇게 썬 요리였다. 음식에 정통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페르낭 푸앵이 생전에 만든 가장 유명한 요리로서 잘 알려진 요리였다.
  "자, 들어 보세요."
  "아닙니다, 다 나오고 난 뒤에."
  하고 쓰지 시즈오는 말했다. 그와 아키코 앞에는 요리가 나와 있었지만 마담 푸앵 앞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마담 푸앵이 말했다.
  "당신들이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요리에는 가장 맛있는 순간이라는 게 있어요. 그것은 웨이터가 날라 와서 눈앞에 놓았을 때예요. 요리사도 웨이터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만들고 날라 오는 거예요. 이 요리에 대해 생각해 봐요. 1분이 지나면 아스피크가 녹기 시작하고, 브리오슈에 배어들겠죠. 3분이 지나면, 그다음은 푸아그라가 흐물흐물해져서 배어들어요. 그렇게 해서, 1분마다 본래의 요리가 아닌게 되어 버리는 거예요. 맛있는 요리를 맛있게 먹을 생각이라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바로 먹지 않으면 안 돼요. 사양은 필요 없어요."
  쓰지 시즈오는 샤토 디켐을 아주 약간 입에 머금고, 그러고서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들었다. 그 나이프와 포크에서도 피셔 부인의 식탁에서 느꼈던 진짜 은의 무게가 손으로 전해졌다.
  '이 얼마나 대단한 맛인가'
  하고 쓰지 시즈오는 그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생각했다. 입 안에 남아 있는 감미로운 와인의 뒷맛으로 브리오슈의 버터와 부용의 풍미, 거기에 푸아그라의 맛과 트뤼프의 향이 하나가 되어 퍼져 갔다.
  "어때요?"
  마담 푸앵이 물었다.
  쓰지 시즈오는 아무 말도 못하고 미소만 지었다.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미식예찬]중에서, 에비사와 야스히사, 김석중 옮김, 서커스, 2008




[야구감독]을 읽을까 말까 망설였지만 [미식예찬]이라는 제목에 좀 더 끌려서 먼저 읽게된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장편소설입니다. 읽을 때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존 인물인 쓰지 시즈오[辻静雄]의 이야기와 픽션을 혼합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랐습니다. 이런 소설같은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 있었다는 점에서 한 번, 그 실화를 적절하게 잘 요리한 작가의 재능에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요미우리신문 기자를 하던 쓰지 시즈오가 미국의 CIA와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루와 함께 세계 3대 조리학교로 꼽히는 쓰지(辻)조리학교를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표면적인 줄거리지만 그 속에 진정한 프랑스 요리를 만들고자 하는 주인공의 의지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묘사가 생생해서 어떤 스릴러를 읽을 때 보다도 빠른 속도로 읽었습니다. 모르는 것을 익히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최고를 먹어봐야 한다고 엄청난 돈을 들여서 본고장으로 연수를 시키고 항상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알고, 자신이 알고 있는 프랑스 요리에 대한 지식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두 널리 알린다는 쓰지 시즈오의 생각들은 이 책을 경영서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책 뒷표지에 보면 일본독자의 서평 발췌가 여럿 있는데 이 중 가장 공감하는 부분을 옮겨 봅니다. "기교의 극에 달한 요리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스포츠의 복잡한 상황 묘사에도 뒤지지 않은 정보량 많은 소재를 선명하게 그려낸 에비사와의 너무나 명석한 문장도 상쾌하다." [야구감독]이 정말 기대됩니다. ^^)/




p.s. 본문에는 쓰지라고 표기되었지만 많은 사이트상에서는 츠지로 표기를 하고 있더구요. 책을 읽고 나면 당연하게 궁금해지는 츠지조리학교 페이지를 몇 개 찾아 봤습니다.


- 辻調理師専門学校
- 츠지쪼그룹교 한국어페이지
- 츠지원 : 한국에 문을 연 요리 아카데미 [관련기사 : 세계 3대 요리교육 명문 `日 츠지조그룹교` 한국 온다]
- 세계적인 조리학교 '츠지쪼그룹교'를 가다


p.s. 번역본, 원서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