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line

[밑줄] 불꽃축제는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flipside 2023. 5. 16. 08:16

2008/10/19 00:32

 

  도도로키는 체념하듯 말한다. "불꽃축제는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하고 조용히 읊조린다.
  "무슨 말이에요. 뜬금없이."
  "마을마다 예산은 다르지만 말이야, 그래도 여름 휴가철이면 시집갔던 딸이 아이들 데리고 친정 와서 식구들끼리 함께 구경 가거나 하는 점이 똑같지. 온갖 직업에 다양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한자리에 모여서 하늘로 펑펑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며 아, 크다, 예쁘다, 내일도 다시 힘내야겠다, 생각을 하고, 내년에도 또 보러 오자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불꽃축제의 좋은 점이라고."
  매사에 엉성하기 짝이 없고 거친 도도로키가 갑자기 섬세한 말을 하는 바람에 야오야기 일당은 살짝 당황했다.
  "뭔지 몰라도 좋은 말을 하네요, 록키." 모리타가 근질근질한 듯 몸을 꼼지락거렸다.
  "더 좋은 말을 해주지." 도도로키가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불꽃놀이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이 보는 거잖아.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어쩌면 다른 곳에서 옛 친구가 같은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아? 아마 말이지, 그런 때는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같은 생각?" 야오야기는 무심코 반문했다.
  "추억이란 건 대부분 비슷한 계기로 부활하는 거야. 내가 떠올리고 있으면 상대도 떠올리고 있지."



[골든 슬럼버]중에서, 이사카 코타로, 김소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총리 암살범 누명을 쓰고 하루아침에 - 실은 그보다 더 짧은 시간내에 ^^ - 현상수배범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로 한줄요약이 가능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보기에는 녹록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총리 암살이라는 사건을 가지고 일단 "사건의 시작"과 "사건의 시청자"로 도입부를 장식한 작가는 특이하게도 3부에 "사건 20년 뒤"를 배치시켜 아 도대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길래 이런 식의 해석과 후일담이 있는 것일까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 5부에가서 "사건 석 달 뒤"로 큰 흐름 이야기에 흠뻑빠졌던 독자를 건저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짜임새 있는 구성과 흥미를 끄는 - 시큐리티 포드 같은 - 여러 설정,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 소설에서 늘 볼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밑줄을 긋게 만들고 싶은 대화들이 넘쳐나는 작품이라 꽤 분량이 있는 소설이었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초반부 여기 저기 툭툭 던져 놓았던 작은 것들이 후반부에 가면서 의미있게 엮이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너무 작위적인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맨 마지막 장의 깔끔한 처리를 보면서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게 이사카 코타로의 최고는 언제나 [칠드런]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이사카 코타로의 최고라고 꼽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 이렇게 멋진 작품을 썼으니 다음 작품은 또 얼마나 대단하려나 하는 기대를 갖게한 훌륭한 소설로 적극 추천합니다.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번역본 표지 멋지죠~

p.s. 위 밑줄을 보다가 뜬금없이(아니 자연스럽게 ^^) 생각난 장면~ 시집갔던 요츠바가 딸을 데려와서..(퍽)

출처는 [요츠바랑] 3권 마지막화 "불꽃놀이 대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