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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너무 고생해서, 처음으로 '후기'라는 것을 써 보기로 했다

flipside 2023. 5. 16. 19:02

2009/04/11 20:24 

 

...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싫어한 것은 교사만이 아니었다. 나는 주위 어른들 대부분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들 자신은 색과 욕망과 돈밖에 흥미가 없는 주제에, 상대가 어린애라고 하면 어른스러운 훈계 한마디라고 하고 싶어지는지, 진부한 설교를 득이양양해서 늘어놓는다. 이쪽이 진절머리를 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가 끝에 가서는 반드시 "젊었을 때 공부해라."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은 도대체 얼마나 했는데!"라고 따져 묻고 싶어진다.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그저 나이만 먹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녀석들에게 얕보일 수는 없다고,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바짝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미움받을 차례가 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슴도치의 바늘 끝도 제법 무디어졌다. 그것이 좋은지 어떤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다만 마음 한구석이 쓸쓸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소설을 썼다. 본격 학원 추리물은 데뷔작인 [방과 후]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서, 무척 고생했다. 너무 고생해서, 처음으로 '후기'라는 것을 써 보기로 했다.



'저자 후기' 중에서, [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신경립 옮김, 창해, 2008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대부분 읽었지만 저자 후기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라 옮겨적어봤습니다. 후기 내용도 재미있구요. 이 작품이 2번째 작품이니 이후 나온 작품은 대부분 고생 안하고 쓴 것이 되나요? ^^ 1985년 첫 작품 [방과 후]와 비슷하게 고등학교가 배경인데 위에 옮긴 것처럼 교사를 보는 시각도 그렇고 운동부인것도 그렇고 주인공 니시하라와 작가가 많이 겹칩니다. 이제는 식상할 정도지만 늘 쓰는 표현처럼,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답게 술술 잘 읽힙니다만, 주인공이 고등학생인 것도 있고, 초기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고등학생들이 친구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푼다는 초반부 설정이 히구치 유스케의 [나와 우리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데, 비교를 하자면 [나와 우리의 여름]의 완승입니다.) 요즘 나오는 근작들만 보신 분이라면 풋풋하네 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좀 싱겁군 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방과 후]가 더 재미있었는데 아마 다른 분들도 그렇게 평가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




p.s. 저는 원서의 1번째 표지가 제일 맘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