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line

[밑줄] 작품 속에 다잉 메시지를 사용하려면

flipside 2023. 5. 16. 19:16

2009/08/05 13:52

 

... [X의 비극]은 퀸이 최초로 다잉 메시지를 다룬 작품이다. 만원을 이룬 시영 전철 안에서 살해당한 사내는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X모양으로 겹치고 있었다. 물론 레인은 그 수수께끼를 마지막에 밝혀내지만, 범인만 알고 나면 뜻이야 어떻게든 갖다붙일 수 있다. [X의 비극]은 틀림없이 명작이다. 그래도 이 다잉 메시지를 두고 말하자면 무릎을 치며 납득할 정도는 아니었다.
  작가도 별로 자신이 없지 않았을까? 설탕단지의 다잉 메시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레인은 이런 대사를 한다. 먼저 피해자가 하얀 분말을 움켜쥐어 범인의 속성을 나타낸 것을 '절묘한 생각'이라고 평가하면서.
  "죽기 직전의 아주 짧은 순간에 범인에 대해서 자신이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단서를 남겼던 것입니다. 곧, 이처럼 죽기 직전의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에 인간의 두뇌는 한없이 놀라운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해결을 향한 포석이라기 보다는 사전 변명이 아닐까? 퀸이 작품 속에서 시도한 다잉 메시지 중에는 성공한 예도 적지 않지만, 이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간이 죽기 직전의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에 어떠한 돌발적 아이디어라도 낼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걸 해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작품 속에 다잉 메시지를 사용하려면 그런 부자연스러운 문제도 유념해야만 한다. ...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중에서, [하얀토끼가 도망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김선영 옮김, 시작, 2008




[월광게임]에 이어서 2번째로 국내 출간된 아리스가와 아리스(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항상 이름이 헷갈려요 -_-)의 단편집입니다. 표제작외에 "부재의 증명", "지하실의 처형",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 이렇게 4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얀토끼가 도망친다"가 중편수준이고 나머지 세작품은 단편입니다. 네 작품 중에 표제작의 트릭도 좋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부재의 증명"이었습니다. 밑줄 그은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도 다잉 메시지에 대한 것으로 흥미로웠습니다. 단 다잉 메시지가 [겐지이야기]와 관련된 향(香) 기호로 일본인들에게는 익숙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무척 낯선 것이라서 재미의 강도가 조금 떨어졌어요. 개인적으로 최고에요~ 적극추천합니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흥미로운 단편집을 찾으신다면 맘에 들어하실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에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





p.s.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의 원제는 "比類のない神々しいような瞬間". [X의 비극]에서 인용된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re are no limits to what the human mind cannot soar in that unique godlike instant before the end of life."


p.s. 번역본과 원서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