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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작가가 된다는 것은

flipside 2023. 5. 16. 19:16

2009/08/24 23:33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맨 처음 한 것은 스물네 살 겨울이었다. 그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원고지를 사는 것도, 작품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우선 필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다.
  아직 한 줄도 쓰지 않았으므로, 내 실력이 어떤지도 몰랐다. 그래도 꿈만은 어처구니없이 컸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매스컴에 이름이 알려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나쁜 짓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본명을 쓰면 곤란하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생각한 게 그거였다. ...



[블랙티]의 작가의 말 중에서, 야마모토 후미오, 김미영 옮김, 창해, 2009




[플라나리아]의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의 단편집입니다. 꽁트에 가까운 이야기 10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한 편 한 편 다듬기에 따라서는 꽤 분량이 되는 중편 소설이 한 권씩 나올만한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는 재미있는 작품집이었습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이름이 알려지고 이름이 알려지면 나쁜 짓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필명을 먼저 생각했다는 발상이 웃음이 나면서도 공감이 가서 밑줄을 그어봤습니다. 위에 옮겨적은 말에 이어서 작품의 내용과 겹치는 작가의 소소한 나쁜 짓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옮긴이가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는 그것을 단순히 '경범죄'의 틀로 묶어 놓고 말아도 좋은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우리는 죄라는 지뢰가 곳곳에 둘러싸인 현실 속에서 언제 밟을지 몰라 벌벌 떨며 살고 있다고." 요약한 것처럼 한 편 한 편의 마무리가 모두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플라나리아] 같은 작품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알려주는 작가의 초기작으로 짧은 이야기 모음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




p.s. 제목이자 첫번째 단편 제목인 '블랙티'(ブラックティ)는 홍차가 아니라 장미의 한 이름이랍니다. 찾아보니 좀 진한색의 장미도 많이 나오는데 이런 장미도 블랙티였네요~ : Blacktea (Rose)


p.s. 번역본과 원서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