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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역사적 통념

flipside 2023. 5. 17. 22:10

2010/03/21 10:18

 

... 그 해에 나는 디브너 연구소 소장 조지 스미스와 역사적 통념을 주제로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특히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한 번은 그가 내 사무실에 들러 한 공영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과학사에 나타난 통념과 진실'이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준비한 토론 안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의 원고에 등장한 여러 가지 사례 가운데 한 가지가 특히 내 눈을 사로잡았다.
  뉴턴 전문가인 그는 뉴턴이 어머니 집 정원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 이론을 발견했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를 통념의 한 예로 들었다. 뉴턴이 중력을 발견한 지 150년이 지난 1839년에 처음 등장한 이야기 속에는 사과의 역할이 좀 더 진화된 형태로 등장한다. 사과가 단지 뉴턴의 상상력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떨어지는 사과를 머리에 맞고 중력 이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뉴턴이 사과를 머리에 맞은 것은 고사하고 사과에서 영감을 영감을 얻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어떤 역사 기록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통념에 따르면 이 사과 사건은 뉴턴이 중력 이론을 출판하기 20여 년 전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스미스처럼 뉴턴의 논문과 편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뉴턴의 중력 이론은 단계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어떤 종료의 과일도 관련이 없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스미스는 토론 안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럼에도 사과 이야기는 서구 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 뉴턴이 중력 이론을 발표하기 20여 년 전에 이미 중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이러한 통념은 최근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교재들에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지상 최대의 과학 사기극 -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모략과 음모로 가득 찬 범죄 노트] 중에서, 세스 슐만, 강성희 옮김, 살림, 2009




책은 전화 발명자로 알려진 벨에 대한 것이지만 뉴턴 이야기에 밑줄을 그어봤습니다. 벨이 그의 조수 왓슨에게 전화 통화가 성공하는 줄도 모르고 우연히 이야기한 "이리로 와보게 왓슨군. Mr. Watson -- come here!" 이라고 했던 어릴 적 위인전의 실린 이야기 역시 위의 사과 이야기와 마찬가지인 셈이지요. 과학 전문 기자 세스 슐만은 MIT의 디브너 연구소에서 에디슨과 벨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벨의 실험노트를 직접 확인하게 되고, 그 결과 이전에 벨을 연구했던 학자들이 그냥 지나쳤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책의 부제처럼 벨의 실험노트는 범죄노트가 되었구요.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의문인 "아니 이런 것을 그 많은 벨 전문가들은 왜 몰랐을까?"하는 의문은 후반부에 가서 밝혀지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해서 "단지 그런 것이었어?"ㅠㅠ 하는 허탈감마져 들게 됩니다. 즉 실제 역사에 비추어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슐만은 발견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친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뉴턴의 사과나 벨의 첫 통화 에피소드가 아무런 검증없이 계속 되풀이 되었던 것이지요.


저자가 의문을 갖고 여러가지 사실들을 확인하는 과정이 매우 속도감있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어떤 소설보다도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벨이나 그레이 이외에도 전화에 대한 초기 아이디어를 냈던 많은 과학자들의 업적이 언급되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저처럼 과학/기계에 대해 무지한 사람도 전화가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었군~ 하고 이해가 될 정도로 내용이 쉽게 서술되어 부담없이 접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p.s. 삼성이 예전에 '세계1류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한다고 했는데, 이 책을 보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1등은 벨이 아니라 억울하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한 엘리샤 그레이가 맞습니다. 삼성은 이런 배경을 알고도 벨의 이야기를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퍽)


p.s. 작가가 이 책을 쓰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던 벨의 실험노트는 우리도 쉽게 온라인(미국의회도서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Alexander Graham Bell - Lab notebook 21쪽에 바로 문제의 이미지가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