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런 사람들은 대개 심해어 같으니까요
2010/06/12 23:03
"마스터, 악랄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걸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나쁜 짓을 계속하고 사람을 배신할 수 있는 걸까요?"
"글쎄, 모르겠어요."
마스터는 카운터 너머에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자기 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심해어 같으니까요."
"무슨 말이에요?"
"미나시 씨는 텔레비전에서 심해어가 헤엄치는 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수백 미터, 때로는 수천 미터나 깊은 바다에 있는데도 녀석들은 멀쩡하잖아요."
듣고 보니 이상했다.
"바다 위쪽에 사는 물고기를 그런 깊숙한 바닥까지 데리고 가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순식간에 납작해져서 죽을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녀석들은 아무렇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녀석들은 거기서 태어났거든요. 처음부터 깊은 바다에서 태어났으니까 몸이 그런 환경을 견딜 수 있는 거예요. 아무리 주위에서 강한 수압을 받아도 자기 몸이 같은 압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부서지지 않는 거죠. 아무런 문제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악랄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건가요?"
잠시 침묵하던 마스터가 중얼거렸다.
"짐작이지만요."
마른 두부 같은 황토빛의 손을 카운터 위로 느릿느릿 뻗었다. 주름진 손끝은 거기에 떨어진 물방울을 의미 없이 만지작 거렸다. 나는 고개를 들고 술을 모두 입에 털어 넣었더,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이유 때문에 심해어를 키울 수도 없어요."
뜨거워진 머릿속에 마스터의 말이 가늘게 울렸다.
[외눈박이 원숭이]중에서, 미치오 슈스케, 김윤수 옮김, 들녘, 2010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준 충격보다는 덜했지만 어쨌든 후반부에 드러나는 여러 사실들에 깜짝 놀랐습니다. 반전이나 미스테리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고 소소한 재미와 뭉클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미스테리 작가 미치오 슈스케를 기대하거나 놀라운 반전에 방점을 찍고 읽을만한 소설은 아닌듯 하네요. 위에 밑줄 그은 부분보다 더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지만 마지막 반전이랑 연결이 되는 부분이라 심해어 부분에 밑줄을 그어봤어요. 미치오 슈스케 책은 앞으로도 나오면 읽어볼 예정~
p.s. 번역본과 원서 표지~ 책에 트럼프 카드가 주요한 소재로 나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