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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이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 안 들어요?

flipside 2023. 5. 18. 19:57

2011/05/30 13:27

 

  언젠가 교코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 안 들어요?"
  그러자 교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연애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능숙해지지 않더라고. 몇 번을 해도 결국은 젊었을 때하고 비슷한 일로 상처를 받고 비슷한 일로 좌절해. 지금은 오히려 짊어지고 갈 게 늘어서 실패할 확률이 옛날보다 더 높아졌지. 더 좋아질 것도 없으니 이젠 됐어. 포기했어. 지쳐버렸어."
  "연애하는 거요?"
  나츠가 되묻자 교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랑에 빠졌다 깨어나는 것. 약물에 취해 극채색 꿈을 꾼뒤하고 똑같은 것 같아. 깨어난 다음이 힘들잖아. 그러느니 처음부터 꿈 따윈 꾸지 말고 그냥 평화롭게 꾸벅꾸벅 조는 게 훨씬 낫지. 그런 느낌 이해하겠어?"
  나츠가 잠깐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대충 이해할 것 같아요."



[더블 판타지]중에서, 무라야마 유카, 김성기 옮김, 문학의문학, 2010




[별을 담은 배]로 나오키상을 받은 무라야마 유카의 장편소설. [별을 담은 배]가 주는 희미하면서도 가슴 저린 소소한 느낌을 생각한 분들이라면 화들짝 놀랄 정도로 다른 작품. 출판사의 소개글에는 "불온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 관능 소설"이라고 말하는데 그 정도가 무척 강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러워 술술 읽히고 줄거리도 흥미로우며 작은 등장인물 하나까지 심리묘사가 매력적인 소설이라 적극 추천하지만 소설의 첫문장이 "남자의 엉덩이는 왜 이렇게 차가운 걸까?"라는 점을 감안하시고 읽을지 말지 결정하시면 어떨까 합니다.^_^ 제목인 "더블 판타지"는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지만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함께 낸 음반(둘이 키스하는 사진이 표지인 앨범) 이름입니다.




p.s. 번역본과 원서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