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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누명

flipside 2023. 5. 18. 19:58

2011/06/29 23:27

 

"저 같은 전과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게 건방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미야기 교도소에 있으면 쇼와 그 자체와 마주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쇼와 그 자체?"
"예. 혹은 쇼와라는, 무리하게 급성장한 시대의 일그러짐이랄까, 외상이랄까, 그런 것이 거기에 꾸역꾸역 쑤셔 넣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단한 선생님이나 고명한 작가 분은 결코 이런 말을 하지 않지만 저한테 글 쓰는 재능이 있다면 세상을 향해 그런 것을 쓰고 싶다고 몇 번쯤 생각했습니다."
"외상이 무슨 뜻입니가?"
"건방진 소리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누명이란 무리한 질서유지 혹은 치안유지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범인이 나오지 않으면 주민에게 사회 불안이 싹트고 나아가 경찰에 대한 불신이 치솟는다. 아런 것은 모두 돈벌이에 열중하던 그 시대에는 지극히 위험한 것 아닙니까? 일본인 모두가 기업의 전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때에, 세상에 알려진 흉악한 사건애는 반드시 결말을 지어둘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일본인의 행복을 위해 행해지는, 정의라는 명목에 불합리한 폭력입니다. 이런 시대가 벤야마나 데이코쿠 은행 사건의 그 뭐라고 하는 경감이라든지, 그런 지독한 인물을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시대 분위기에 어딘가 그들을 용인하는 요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 최근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 유명한 범죄가 다 미해결이지요. 이것은 딱히 요즘 경찰관의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라고 봅니다. 본래 이런 걸 겁니다. 사건 발생 후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경찰이 범인을 모조리 밝힐 수 없지요."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중에서, 시마다 소지, 한희선 옮김, 시공사, 2011




[점성술 살인사건] 이후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시마다 소지의 작품. 읽으면서 이렇게 사건을 늘어놓고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하지... 했는데 읽다 보니 어느덧 결말. 트릭도 트릭이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도 생각보다는 매끄럽게 녹아 있어서 오! 시마다 소지가 이런 작품을~ 하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요시키 다케시 형사 시리즈물 중에 "한국에 첫 번째로 소개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는데 읽고나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적극 추천~




p.s. 번역본과 원서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