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line

[밑줄] 그냥, 알 수 있다오

flipside 2023. 5. 18. 20:06

2011/12/16 23:26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 아니우?"
  노파가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을 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너무 오래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중에야 반성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치고는 충분히 의미심장한 침묵이었다.
  "역시."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노파가 생글생글 웃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그렇게 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꼴사나웠다.
  노파는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냥, 알 수 있다오."



"기다리는 자의 본분"중에서, [츠나구], 츠지무라 미즈키, 김선영 옮김, 문학사상, 2010




예전에 [밤과 노는 아이들]을 사두긴 했지만 읽지 않고 있는 터라 - 그런 책이 그것 하나만은 아닙니다 ㅠㅠ - 처음 읽은 츠지무라 미즈키의 소설이었습니다. 이 작품만 읽어보니 메피스토상 수상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열렬한 팬, "사춘기 특유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해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 작가라는 이력이나 특징과 이 소설집은 다소 거리가 있어보였습니다.(물론 "단짝의 본분"이라는 단편이 고등학교를 무대로 하기 때문에 학교를 배경으로 한 다른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은 이런 분위기겠군... 하고 짐작할 수는 있었습니다.) 상당히 노련하게 이야기를 이끌고 또 적절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단편집이라서 1980년생 작가의 작품답지 않은 생각이 들었던 탓입니다.


죽은 사람과 만날 수 있게 연결을 해주는 중개자(츠나구)가 있고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 모두 딱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얼핏 [사랑과 영혼]이 떠오르지만 영매의 몸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나 만남은 일회성이고, 또 츠나구의 임무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는 사뭇 다르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낯설지 않은 설정이기 때문에 쉽게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었고, 예상 되는 결말이긴 하지만 한 편 한 편이 감동적인 마무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연작 단편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마지막 단편인 "사자의 본분"에 나옵니다. "산 사람을 위해 죽은 사람이 존재해도 되는 것일까?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은 전부 산 사람들의 이기적인 판단이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각자의 것이겠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주인공도 조금씩 성장하고 저도 성장한 것 같습니다. 다른 츠지무라 미즈키의 소설도 찾아 읽어볼 참입니다. ^^




p.s. 번역본과 원서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