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맨 2 | 돌연변이와 퀴어
2005/01/16 13:02
2004년 06월 27일
영화 내용을 조금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미리 알기 원하지 않는 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
[X맨 2] 돌연변이 mutant 와 퀴어 qu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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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알고나면 싱겁기 짝이 없지만, 모르고 있을 때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특정업계에서만 주로 쓰는 약어가 그런 예가 될 수 있겠죠. 옥외광고업계에서 일했던 제 친구가 처음 입사했을 때 겪었던 "PC"라는 용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PC하면 personal computer로만 알고 쓰던 ― 조금 더 나가면 political correct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 보통사람인 녀석은 그것이 placard(플래카드)의 약어로도 쓰이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고 하더군요.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영역에 속한 사람들은 뻔히 알 수 있는 코드를 그곳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엑스맨 2 X2](2003)의 동성애 코드가 그것인데, 실제로 동성애자거나 관련 문화에 대한 여러 글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대부분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이러한 부분을 일반인들은 잘 모르거나, 혹 안다해도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군"하는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말로 돌연변이라고 번역된 "mutant"는 "queer"의 우리말 번역인 '기묘한…', '이상한…', '괴상한…' 등과도 겹치는 이미지라서 쉽게 짐작할 수도 있을 테지만, PC를 보고 바로 플래카드를 떠올리지 못하는 비옥외광고업계 사람들처럼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X맨2]의 영화평에는 이 요소에 대한 지적이 빠지지 않지만, 그 평자들이 얼마만큼 그런 요소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맨 아래 링크한 영화평에도 지적되어 있듯 [X맨2]에는 두가지 동성애 코드가 나옵니다. 하나는 부모에게 하는 커밍아웃, 다른 하나는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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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얼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이스맨(Iceman) 바비. 바비의 부모님과 동생은 바비가 영재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비가 다른 돌연변이 친구들과 찾아와 부모에게 자신은 돌연변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난감해하고 동생은 침입자가 왔다고 경찰에 신고하며, 어머니는 자신의 탓이고 말하며 돌연변이가 되지 않기위해 노력을 했는지 묻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커밍아웃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부모님에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비는 일반적으로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할 때 하지 말아야할 일"을 몇 가지 하고 있습니다. 1.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점(연락도 없이 들이닥쳤습니다) 2. 부모님과 동생 모두를 모아놓고 한꺼번에 했다는 점(친구에게 할 때도 여럿에게보다는 1:1로 만나서 하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3. 스스로 확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커피를 얼음으로 만들 때는 당당했지만요)이 그것입니다. 물론 여러 친구들과 함께 나타나 커밍아웃 한 것과 집과 마당이 불바다가 된 것도 실수라고 볼 수 있겠지만 실제 커밍아웃에서는 그것이 적용되지는 않겠죠 ^^*
바비의 돌연변이 커밍아웃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2층 창문에서 물끄러미 내다보는 부모님과 동생은 손조차 흔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3편이 나올 것이라는 것은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3편에서는 아마 바비가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는데 ― 두말할 것 없이 상대방은 파이로(Pyro)가 되겠죠 ^^ ― 바비의 부모님과 형제는 그 때는 어떻게 나올지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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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추적에 평생을 바친 스트라이커 장군의 아들 제이슨은 다른 사람에게 환각을 만들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입니다. 스트라이커는 아들이 만든 환상에서 벗어나고자 자살을 택한 자신의 부인 때문에 돌연변이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고, 모든 돌연변이들의 말살을 꽤합니다.
동성애자 자식을 둔 부모들 중 스트라이커처럼 자식을 인정하지 않고 개조(치료)하려는 노력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 프롬 헤븐]에서 남편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 캐시는 남편과 함께 바우먼 박사를 찾아갑니다. 자신감에 넘치는 이 의사는 동성애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수치까지 듭니다. 5명 중 1명은 치료가 된다고 말이죠. [파 프롬 헤븐]의 배경이 1950년대 말 미국임을 생각한다면 50년의 시간을 띄어 넘은 바우먼 박사와 스트라이커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은 참 무섭게만 느껴집니다.
스트라이커와 그의 아들 제이슨의 죽음이 명확히 나오지 않았으니 3편에서는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모르겠습니다. 아 농담이긴 하지만 [아메리칸 뷰티]를 떠올리자면 스트라이커가 돌연변이일지도 모릅니다. ^^*
물론 이외에도 자비에(Xavier) 교수의 영재학교나 스톰(Storm)의 일반인들에 대한 증오 역시 동성애자 커뮤니티나 일반 사회의 냉대에 단련된 동성애자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로 볼 수 도 있습니다. 좀 더 이야기를 느슨하게 확대하면 울버린(Wolverine)이 자신의 과거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것을 정체성 찾기로 연결시킬 수도 있겠죠
이런 면에서 [X맨2]는 일반인은 잘 모르겠지만 동성애자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영화"의 미덕을 고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바비가 부모님에게 자신이 돌연변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했고. 스톰이 살기 위해서는 증오도 필요하다는 말을 할 때 가슴이 뜨끔했으며, 파이로가 불덩어리를 날릴 때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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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맨 2]는 이미 예고편에서 여러 번 볼 수 있었던 현란한 텔레포트 실력을 발휘하는 나이트크롤러(Nightcrawler)의 백악관 침입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이 인상적인 오프닝 때문에 잊으셨을지 모르지만, 실제 영화의 첫장면은 백악관 투어 가이드가 링컨 대통령의 초상화 앞에서 그의 취임사중 마지막 단락을 읽어주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연설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큰 주제와 연결됩니다. 링컨 대통령은 흑인과 백인, 남부와 북부를 생각하면서 이 말을 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저는 "동성애자"와 "일반인"을 그가 말한 "우리"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입니다. 우리는 적이 돼서는 안됩니다. 관계가 나빠졌다고 해도 그 감정 때문에 우리 서로의 애정의 끈을 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We are not enemies, but friends. We must not be enemies. Though passion may have strained it must not break our bonds of aff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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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X맨 2]의 동성애 요소를 지적한 글들을 모아봤습니다.
□ X맨2 X2 [듀나의 영화평]
한글 : http://djuna.nkino.com/movies/x2.html
□ 엑스 맨의 동성애적 세계 The queer world of the X-Men [film.2.0] [Salon.com]
한글 :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213
영어 : http://archive.salon.com/ent/feature/2000/07/12/x_men/print.html
□ How the X-Men Changed My Life [Advocate]
영어 : http://www.advocate.com/html/stories/889/889_xmen.asp
□ AC/DC COMIC BOOKS: GAY BOYS AND OUR SUPERHEROES
영어 : http://www.geocities.com/WestHollywood/Heights/5883/comic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