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와 안개의 집 | 바딤 페렐만
2005/05/07 10:26
영어권 포스터에 보면 "어떤 꿈은 나눠가질 수 없다(some dreams can't be shared)"라는 말이 써있습니다. 우리나라 포스터에는 좀 더 과격하게 "그들이 집착하는 희망은 결코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써있구요. 둘 다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하게 하는 말이긴 하지만 꿈을 나눠가질 수 없다는 말은 그래도 당사자들이 어쩔 수 없는 원인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 집착하는 희망... 이라고 하면 스스로 자초한.. 그래서 다 당사자들 탓인... 그런 느낌이 듭니다.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인 캐시(제니퍼 코넬리 분)의 경우에는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인 탓에 스스로 자초했다는 말이 맞지만 베라니 대령(벤 킹슬리 분)의 경우에는 캐시의 집만 사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으로 치닻는 삶의 잔인한 고리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소 운명적인 희생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개운하지 않고 뭔가 찜찜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양쪽이 처한 사항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 줄 수 없는 - 어떤 평에는 [주먹이 운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누가 이길지 응원을 해야 하나... 하는 것과 비교를 했더군요- 상황과 예상치 못한(원작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탓에 자세한 줄거리를 읽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할 듯 합니다) 비극적인 결말에 할 말을 잃게 되서 그런것 같습니다.
다들 칭찬을 하듯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습니다. 제니퍼 코넬리는 거칠고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모든 비극이 다 이 여자가 우편물을 확인하기 않았다는 데서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볼 수 가 없더라구요) 백인 여성 캐릭터를 잘 소화했으며, 벤 킹슬리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빼어납니다.(대령의 부인역으로 나온 쇼레 아그다시루와 벤 킹슬리는 각각 2004년 미국 아카데미 상 여우조연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아그다시루는 [콜드 마운틴]의 르네 젤위거에게, 킹슬리는 [미스틱 리버]의 숀 펜에게 밀렸습니다. 음악상 후보로 오른 제임스 호너는 [반지의 제왕]에게.. 쩝...)
현실도 갑갑한데 이런 이야기까지 영화로 봐서 더 기분이 꿀꿀해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저도 포함 ^^)들에게는 최악의 선택 중 하나 일 것 같구요 ^^ 좋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보고싶으시다면, 줄거리의 흐름과 개연성을 영화 선택의 기준으로 생각하신다면 후회하지 않으실 만한 작품입니다. 단 언제 극장에서 내릴지(혹 벌써 내렸을지도 -.-;;) 모르니 보시려면 서두르세요~
p.s. 원래 포스터인데 깨진 유리로 효과를 준 것이 인상적입니다. 영화 내용을 생각하면 잘 맞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는 텍스트를 많이 넣어야되서 뺐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