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06 12:47

황진이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의 대부분이 야담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그와 교류를 나눴던 벽계수나 소세양, 서경덕, 이달 등이 모두 실존인물이고 그가 남긴 글 또한 여럿 남아 있으니 상상속의 인물은 아니지만 일화들은 매우 신비로운 인물임을 말해줍니다. 영화 [황진이]는 이런 역사속 황진이의 신비감은 걷어내고 살을 붙여서 좀 더 생생한, 당대 뿐만 아니라 현재에 등장해도 매력적이고 공감이 갈만한 인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는 큰 굴곡없이 평이하게 2시간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나눠지긴 하겠지만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습니다. 이야기의 많은 요소 - 예를 들어 황진이를 사모하다 상사병 걸려 죽는 이야기 - 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진행방향 또한 낯익은 것이기 때문이었는데, 영상의 아름다움이나 주인공역 송혜교의 아름다움이 이 부분을 많이 상쇄시켜주긴 했습니다. ^^ 황진이의 의상이나 후반부 금강산 장면은 정말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배우들의 연기는 잘 모르겠다.. 는 평을 내리고 싶습니다. 주인공 송혜교나 유지태는 어떨 때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당대인물로는 여겨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게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송혜교가 정말 이쁘게 나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더라구요. *_* [거룩한 계보]에서 정순탄역으로 나왔던 류승룡은 배역에 딱 맞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사또 캐릭터가 다소 비열하여 -.- 연기에 관계없이 감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시선이 갔던 배우는 윤여정, 오태경, 예수정, 김응수였었습니다. 윤여정은 황진이를 돌봐주는 할멈으로 나오는데 비중은 작지만 확실히 젊은 두 배우와 비교되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진이의 어머니로 잠깐 나오는 예수정이나 서경덕역의 김응수 역시 카메오 수준으로 잠깐 출연하는데 확실히 존재감이 있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오태경은 제 기억속에는 MBC 드라마 [사춘기]의 정준 친구로만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보니 반갑더군요.(그 동안 오태경이 출연한 작품 중에 제가 거의 본 것이 없더라구요) 연기도 잘하고 기대되요. ^^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황진이가 "기생년을 이토록 어렵게 품는 사내가 어딨답니까?"하는 부분이었는데 극장안 모든 분들이 다들 웃으시더라구요. ^^ 마지막으로 황진이의 시조 중 전해오는 6편 중 가람 이병기가 "이렇게 노래한 연정의 토로는 과연 신품(神品)이"라고 칭찬했던 시조를 아래 옮겨봅니다.([명시조감상], 이상보편, 을유문화사, 1988) 드라마나 영화속에서 그려지는 황진이의 사랑은 모두 "보내고 그리는 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어저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더냐
있으라 하더만 가랴마는 제 구타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p.s. 드라마 [황진이]의 주인공이 노력을 통해 성장하는 천재에 좀 더 현실에 뿌리를 내린 인물을 보여줬다면 영화 [황진이]는 아다치 미치루 만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재능을 알고 원할 때만 손쉽게 드러내는 천재의 모습에 일찍부터 인생을 달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화면과 TV수상기의 크기 차이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송혜교가 훨씬 이쁘게 나왔더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