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line 389

에드워드 호퍼, <자동 판매식 식당>, 1927

2007. 7. 1. 22:41 에드워드 호퍼, , 1927 ... (1927)에서는 여자가 혼자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다. 늦은 시간이다. 여자의 모자와 외투로 보건대 밖은 춥다. 여자가 있는 실내 공간은 크고, 불은 환하고,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장식은 기능적이다. 돌을 덮은 탁자, 튼튼하게 만든 검은 나무 의자, 하얀 벽. 여자는 사람을 꺼리는 듯하고 약간 겁을 내는 것 같다. 공공장소에 혼자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무슨 일인가 잘못된 모양이다. 그녀를 보다 보면 어느새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 배신이나 상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녀는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손을 떨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북미의 어떤 큰 도시, 2월의 밤 열한 시쯤일 것 같다. 은 슬픔을 그린 ..

underline 2023.05.29

장욱진, <진진묘>, 1970

2007. 7. 1. 23:04 장욱진, , 1970 ... 많은 사람들은 장욱진의 를 장욱진의 아내 사랑의 하이라이트라고 칭한다. 장욱진은 평생 아내의 초상화를 두 점 그렸는데, 특히 첫번째 작품인 가 유명하다. '진진묘'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아내 이순경의 법명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슬프다. 그림 속의 이 '도인'이 이순경이라면 더 슬프다. 왜 이순경은 피가 끓고 살이 들뜨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도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했을까? 그림 속 도인은 피도 살도 모두 흙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마치 화석처럼 눈은 감겨지고 모든 동작은 정지해 있다. 이 그림은 전혀 '인간 이순경'답지 않다. 이것은 그의 실제 성품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실제로는 그야말로 활력이 넘치는 여성인데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장욱진은..

underline 2023.05.29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훔친 입맞춤>, 1780s

2007. 7. 4. 08:30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 1780s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프랑스 미술 전시실입니다. 이곳은 마치 길게 내쉬는 한숨처럼 섬세합니다. 신고전주의 천장 아래에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비둘기색 벽과, 회전을 거듭하는 미뉴에트가 펼쳐지는 상감 세공을 한 플로어 그리고 이쪽 긴 벽에 있는, 아름답지만 무거운 새틴 가운을 입고 있는 젊은 여인과 어둠 속에서 몸의 반을 문 뒤에 숨긴 그녀의 젋음 연인. 그는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려고 합니다. 여인은 우리를 보고 있지는 않지만, 마치 사슴처럼 긴장하고 있습니다. 골똘히 귀를 기울이면서, 언제라도 옆방의 여인들이 이곳으로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여인은 무슨 소리가 들리면 급히 도망을 치기라도 할 기세입니다. 길고 부드러운 그녀의 ..

underline 2023.05.29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2007. 7. 4. 13:38 파블로 피카소, , 1937 ... 가령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에서 현실의 총체성은 무너져내리고 작은 파편들로 흩어진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조각난 것을 선호했다. 이들이 예술의 가공을 통해 해낸 그 일을, 오늘날에는 폭탄이 대신 하고 있다. 폭탄은 현실의 유기적 통일성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파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하여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더 이상 예술의 가공을 거친 '큐비즘'이 아니다. 그 작품 속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인간의 신체들은, 예술의 결과가 아니라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난 어느 마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리얼리즘의 산물이다. 이렇게 전쟁은 큐비즘을 리얼리즘으로 만드는 역설을 실행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terra.es/per..

underline 2023.05.29

파르미자니노, <긴 목의 성모>, 1534

2007. 7. 5. 14:20 파르미자니노, , 1534 "이 그림은 파르미지아니노라 불리는 이탈리아 매너리스트의 작품입니다. 그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이죠. 그림에는 한 개의 기둥이 등장합니다. 그 기둥은, 많은 학자들을 괴롭혀온 문제의 기둥입니다. 성모는 기괴하게 늘여져 있어 마치 모딜리아니의 길다른 인체를 연상케 합니다. 그는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늘여진 인체를 좋아했고 그걸 미(美)라고 생각했죠. 이것을 스틸레 세르펜티 style serpentinata, 곧 '뱀의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즉 뱀처럼 길게 늘여진 아름다움이라는 겁니다. 매너리스트들은 새로운 미의 양식을 구축했습니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천재들이 조화롭고 과학적인 미를 형상화시켰다면, 이들 매너리스트들은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도 새로..

underline 2023.05.29

카라바조, <토마의 의심>, c.1601-1602

2007. 7. 6. 14:38 카라바조, , c.1601-1602 ... 부활한 예수의 신비조차도 스스로의 오성을 사용하여 직접 확인해 보려는 토마. 그는 성서 속에 등장하는 가장 계몽적인 인물이다. 예수의 구멍난 옆구리에 손가락을 찔러 넣으며 이마를 찡그리는 토마에 대한 묘사는 이 작품이 그려진 1599년에는 혁명적이고 충격적인 표현방식이었다. 화가 카라바조는 작품의 혁신성으로 인해 당국과 마찰이 잦았다. ... - 이미지 출처 : http://www.sfu.ca/~poitras/Caravaggio_-_The_Incredulity_of_Saint_Thomas.jpg - 글 출처 : , 진은영, 그린비, 2004

underline 2023.05.29

살바도르 달리, <황혼녘의 격세유전>, 1933-34

2007. 7. 24. 11:23 살바도르 달리, , 1933-34 ... 사쿠라이는 달리의 그림 앞에 서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사쿠라이가 보고 있는 작품은 이라는 그림이었다. 그 유명한 밀레의 을 재구성한 그림이다. 재구성이라고 해봐야 내 눈에는 악취미의 패러디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안 그렇겠는가, 황혼녘 기도를 올리고 있는 남녀 중 남자의 얼굴은 해골로 변해 있고, 여자 쪽의 몸에는 창 같은 것이 꽂혀 있으니. 그리고 전원 풍경은 황량한 바위 벌판으로 변해 있으니. "정말 멋지다." 사쿠라이가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쿠라이는 내 표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쿠라이는 많은 시간을 달리의 그림 앞에서 보냈다. 코끝이 그림에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몸을..

underline 2023.05.29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611

2007. 8. 14. 14:19 페테르 파울 루벤스, , 1611 ... 예를 들어 루벤스가 안트워프의 대성당에 를 그렸을 때 그가 어떤 외교적 용무로 다른 데 갔었음을 나타내 보여주는 유력한 상황증거가 있다면 현대 범죄수사가들은 그것을 루벤스의 작품으로 믿지 않았겠지. 그런데도 여보게, 그런 결론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거든. 비록 부정적인 추론이 법률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유력하다 해도 그림 자체는 어디까지나 루벤스가 그렸음을 증명하겠지. 그 이유는 간단하네. 루벤스를 빼놓고는 누구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일세. 거기에는 루벤스의 개성과 천재가, 루벤스만이 지닌 뭔가가 지워버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네. ... - 이미지 출처 : http://www..

underline 2023.05.29

신윤복, <미인도>, 1825

2007. 8. 20. 12:00 신윤복, , 1825 ... 조선시대 미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조선 후기의 화원 신윤복의 에 나오는 여인이 있다. 얼굴이 복스럽고 턱은 둥글고 크며 눈은 가늘고 눈썹이 가지런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밖의 풍속화 등에 그려진 여성의 얼굴들 또한 공통적으로 견실하고 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선호한 왕비감은 오늘날 미인의 기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현재 사진으로 남아 있는 영친왕의 친모인 엄비나 순종의 비인 윤비, 의친왕비인 김씨의 모습을 보면 지금 기준으로 그리 뛰어난 미인은 아니다. 미인에 대한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랐음은 중국의 절세미인 양귀비가 매우 통통한 여인이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여러 자료에서 확인되듯 조선시대 사람들은 오..

underline 2023.05.29

얀 베르메르, <악보를 든 신사와 소녀>, 1660

2007. 8. 24. 10:49 얀 베르메르, , 1660 ... 베르메르의 많은 그림들은 관람자가 방안으로 들어가진 못하게 하면서, 열쇠 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 보도록 이끄는 듯하다. 관람자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사적인 순간을 훔쳐보는 관음자 觀淫者 voyeur가 된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나 처럼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끄는 작품에서도 근본적인 의문은 그대로 남아있다. 베르메르가 다룬 제재들은 새롭거나 고유한 것은 아니었다. 피테르 드 호흐나 게랄드 테르 보르흐, 그리고 심지어는 렘브란트와 같은 당대 네덜란드 회화의 거장들의 작품 속에서도 동일한 테마가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심리적인 힘으로 따지자면 베..

underline 2023.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