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 5. 14:20

파르미자니노, <긴 목의 성모>, 1534
"이 그림은 파르미지아니노라 불리는 이탈리아 매너리스트의 작품입니다. 그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이죠. 그림에는 한 개의 기둥이 등장합니다. 그 기둥은, 많은 학자들을 괴롭혀온 문제의 기둥입니다. 성모는 기괴하게 늘여져 있어 마치 모딜리아니의 길다른 인체를 연상케 합니다. 그는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늘여진 인체를 좋아했고 그걸 미(美)라고 생각했죠. 이것을 스틸레 세르펜티 style serpentinata, 곧 '뱀의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즉 뱀처럼 길게 늘여진 아름다움이라는 겁니다. 매너리스트들은 새로운 미의 양식을 구축했습니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천재들이 조화롭고 과학적인 미를 형상화시켰다면, 이들 매너리스트들은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도 새로운 미를 향한 탐구를 계속해나갔죠. 그것도 르네상스 정신 중 하나이겠지만요. 르네상스인들이 못할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어쨌든 내 눈에도 이런 인체는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다고 봅니다. 길쭉길쭉한 손가락, 뼈라곤 없어 보이는 우아하고 고상한 나긋나긋함, 의자에 앉은 듯 만 듯한 애매모호한 성모의 자세, 거의 죽어버린 듯한 아기 예수의 누르죽죽한 몸뚱이, 그리고 그것들보다도 더 이상한 건… …."
그건 바로 성모 옆에 그려진 유난히 작은 인물과 그 뒤의 기둥이었다. 교수는 펜 같이 생긴 지시등으로 그 부분을 가리켰다. 조그만 지시등의 붉은 점이 <긴 목의 성모> 오른쪽 아랫부분을 둥글게 휘감아 돈다.
"바로 이 기둥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예언자이지요. 이 작은 예언자는 도대체 무슨 의미로 그려졌을 까요? 중세나 초기 르네상스의 제단화(祭壇畵)에는 그 그림을 봉헌한 부유한 상인이나, 귀족, 왕들의 초상화를 이렇게 작가 그려넣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그런 것 같지는 않죠? 인물의 모습이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너무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이지요. 뼈만 앙상한 대머리의 사나이. 세례자 요한을 연상케 하는 허름한 가죽옷, 마치 예언서처럼 보이는 종이 두루마리를 높이 쳐든 손, 그리고 그 몸짓으로, 이 사나이에게는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보이는 성모와 아기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 사나이. 도대체 이 사나이는 누구일까요? 혹시 파르미지아니노 자신은 아닐까요? 이 자는 왜 여기에 서 있을까요? 더욱 기분 나쁜 건… …."
교수는 잠시 쉬고 다시 말했다.
"바로 이 기둥입니다. 이 기둥은 왜 여기에 서 있을까요? 왜 이렇게 불쑥 솟아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이 기둥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기둥은 무엇을 뜻할까요? 아까도 말했듯이 곰브리치는 이 기둥은 늘여진 인체의 성모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 이미지 출처 :
http://www.lyseo.edu.ouka.fi/kuvataide/albums/renessanssi/Parmigianino_Pitk_kaulainen_Madonna_1532.jpg
- 글 출처 : <헤르메스의 기둥> 1권 중에서, 송대방, 문학동네,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