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8 00:42
지난주 [스가타 산시로] 관람때 예매했던 [카게무샤]를 보러 다시 한 번 한국영상자료원을 찾았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매진은 되었다지만) 사람이 많을까 했는데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신 분들이 많더군요. 거의 상영시작 시간 맞춰서 들어갔는데, 예매는 했지만 오지 않은 자리를 상영 시작시간 이후 부터 다시 배분해서 한 5~10분 정도 늦게 시작했습니다. 시작 전에 영화 종료후에 있을 하야시 가이조[林海象] 감독과 유이 마사유키[油井昌由樹] 대담을 알리기 위해 살짝 두 분 소개도 있었구요. 하야시 감독은 직접 배운적은 없지만 [들개]를 여러번 보면서 영화를 공부해서 자신의 영화스승으로 구로사와 감독을 꼽았고 - 자신이 바닥이라면 구로사와 감독은 천장이라고 표현 ^^ - [카게무샤]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을 맡았던 유이 마사유키는 자신의 아들도 아역배우로 다케마루 역(다케마루는 신겐의 손자로 처음에 신겐이 진짜가 아니라 카게무샤임을 지적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도 함께)을 맡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래는 잠깐 소개 시간의 유이 마사유키.

영화는 179분. 많이 걱정했지만 다행히 잘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 중간 "음... 이 장면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긴걸까?"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전체 흐름에 빠져서 오랜만에 긴 영화를 무사히 ^^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대담 시간에는 여러 이야기와 관객의 질문에 대해 묻고 답하시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유이 마사유키는 개인적으로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에 많은 뒷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흥미로웠던 이야기 몇 가지.
- [카게무샤] 배우 오디션때 3만 명 정도가 모였고 이 중 많은 수를 추려낸 후 5명 씩 면접을 보았다고 하네요. 구로사와 감독이 매번 배우들에게 원래는 1명씩 면접을 봐야 하는데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유이 마사유키도 이 오디션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
- 유이 마사유키 출연 장면은 모두 한 테이크로 OK / 아들인 유이 코타(현재 바텐더로 일하고 있고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고 합니다. ^^)는 처음엔 연기하기 싫어했지만 당시 도호가 고질라를 제작한 영화사고 근처에 울트라맨 스튜디오가 있다는 말에 넘어가 출연을 하기로 했다네요. 구로사와 감독은 아역배우들에게도 성인배우 대할 때처럼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연기지도를 했다고 합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워낙 일본에서 유명하기도 하고 자신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연배였을 시기의 연기라서 첫 배역, 연기였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합니다.
- [카게무샤]가 어느정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사실과 대입되고 후반부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과 다케타 가문의 전투장면의 결말 역시 실제와 같다고 하네요. /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말들의 죽은 모습 연기, 괴로워 몸부림치는 연기는 수의사들이 마취제를 놓고 촬영한 것으로 예상보다 일찍 깬 말들 때문에 병사들이 놀라서 달아나는 장면도 있다고 합니다. ^^
- 구로사와 감독의 촬영은 오전 9시 시작, 오후 5시(시간이 맞나? 따로 메모 한 것이 아니라 기억이 가물가물) 종료를 원칙으로 했는데 여러가지 면(배우나 스탭들은 그 시간보다는 먼저 준비하고 나중까지 마무리를 했기 때문에)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하네요. 또 현장에서는 카메라 3대가 돌아갔는데 배우 클로우즈 업을 담당한 카메라도 가까이 찍지 않고 멀리 두고 망원으로 클로우즈 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가까이서 클로우즈 업을 하면 배우들은 얼굴로만 연기를 하려고 하지만, 멀리 두고 찍으면 어디를 찍고 있는지 잘 몰라서 몸 전체로 연기를 하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 하야시 가이조 감독이 구로사와 감독과 작업했던 여배우와 자신의 영화를 촬영했을 때 그 배우가 하야시 감독님은 스타일이 구로사와 감독님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해서 (대부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창작자로서 싫어해야 정상이지만) 무척 기뻤었다는 이야기도 ^^
- [데루스 우잘라]를 찍을 때 에피소드가 많이 나왔는데, 단풍이 다 떨어져서 일본서 비닐로 만든 단풍을 구해다 하나하나 나무에 붙였다고 하네요. 나중에 다 떼서 일본으로 가져왔다고 함 O.O / 컬러 영화를 다소 늦게 시작한 것은 당시 컬러 영화에서 녹색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이후 에이젠슈타인의 컬러 영화 장면을 보면서 "찍으면 되는구나~"하고 생각을 하게 되고 기술도 자신이 생각하는 컬러 영화에 맞게 발전해서 컬러를 찍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카케무샤]에 나오는 소품들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어떤 것은 진짜고 어떤 것은 가품이었다고 합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여름장면은 겨울에 찍고 겨울장면은 여름에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인 즉은 여름에 겨울장면을 찍으면 여름에 여름장면 찍을 때는 고려 안했던 "정말 더운 것 처럼 보일까?" "이 정도면 여름처럼 느껴지려나?" 하는 점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노력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진품을 찍으면 당연히 멋있게 나오겠지 하고 심상하게 대할 수 있겠지만 가품을 찍으면 진짜처럼 보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는 것과 일맥상통.
이 외에도 많은 재미있는 일화와 구로사와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GV는 모두 녹화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제공을 할 것 같네요. 아래는 대담장면입니다. 맨 왼쪽 부터 사회를 맡은 김영진 교수, 하야시 가이조 감독, 유이 마사유키, 통역자분.(통역이 무척 매끄러워서 더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