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03 23:36
2002년 08월 09일 작성
[부자의 그림일기], 오세영, 글논그림밭, 1995 | 2001
따뜻한 눈과 냉철한 비판의식의 조화
예전과 달리 만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주저할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잉그마르 베리만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있었기에 영화를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박재동 화백이 한 말, '오세영'이 있었기에 만화를 비소로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해 보자. 그의 만화에 붙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오세영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또 대중적이지도 못한 '컬트 작가'이다. 물론 이렇게 그의 만화가 재출간 되기도 했고, 또 그의 만화에 대해서 '예술성과 대중성의 행복한 결합'이라 평하는 말도 있지만 그는 아직도 언더그라운드에 있고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다.
1995년 12월에 나온 첫 작품집인 [부자의 그림일기]는 그의 만화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관문으로 매우 적당한 작품이다. 그의 만화 몇몇에서 보여지는 만화라기 보다는 한폭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적인 화면들을 통해 농촌의 피폐함을 보여주는 "고샅지키는 아이", 실험적인 프레임의 사용으로 새로운 형태의 만화의 가능성을 가늠케 하는 "탈출", 사회에 대한 풍자의식을 두 땅꾼 형제를 통해 보여주는 "땅꾼형제의 꿈", 6.25와 관련된 3대에 걸친 고통의 흐름을 낡은 쌈지에 집약시킨 "낡은 쇠가죽 쌈지의 비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쏴!쏴!쏴!쏴!탕!", 월북작가의 단편을 만화화 한 일련의 작업등 모두 13편의 단편만화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 단편만화집의 제목으로 등장한 "부자의 그림일기"를 보면 그가 단순히 만화가가 아니라 예술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늘은 아이들이 내 이름을 가지고 놀려댔다. 아람이가 먼저 '부자야 부자야 가난뱅이 부자야'하고 놀리니까 다른 애들도 같이 놀려댔다. 아람이는 주인집 아들이지만 정말 너무하다. ... 부자가 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창피하다. 이름을 바꿀 수는 없을까?"
4월 28일 일기로 시작하는 부자의 그림일기는 열흘 분량이다. 한 편에는 부자의 그림일기, 다른 한 편에는 그림 일기의 내용을 아무 대사 없이 설명하는 그림으로 되어있는 독특한 형식의 이 만화는 전형적인 우리 사회의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는 농약중독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시작하지만 이내 단속반에 걸리고, 그래서 공사장에 막일을 나가지만 그 공사장에서 놀던 동생이 다치고... 부자는 학교 운동회때 입어야 할 무용복도 사입지 못한다.
드라마에도 가끔 나오는 슬픈 이야기의 전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끝났다면 "부자의 그림일기"는 흔한 눈물짜는 만화나 드라마 수준에서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세영은 이런 한계를 정말 훌륭하게 극복한다. 조금 길지만 마지막날 일기 전부를 옮겨본다.
"9월 22일 오늘은 운동회 날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정말 행복한 것 같았다. 식구들이 맛있는 것도 많이 싸가지고 와서 사진도 찍어주고 맛있는 것도 먹고 다들 좋아했다. 나는 혼자서 걱정만 했다. 우리가 무용할 차례가 되어서 다른 아이들은 다 옷을 갈아 입었는데 나만 못입었다. 선생님이 '너는 총연습때도 안입고 오더니 또 안입고왔어 너는 빠져'하고 소리쳤다. 나는 혼자서 구석에 앉아서 울었다. 그때 엄마가 오셨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한참을 떠셨다. 나는 엄마가 또 우시는구나 생각했다. 엄마는 맨날 그러셨으니까. 그래서 더 슬퍼져서 엄마의 얼굴을 쳐다봤더니 엄마는 어쩐일인지 울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얼굴이 점점 무섭게 변하더니 내 손을 잡아 끌고 아이들이 무용하고 있는 운동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2학년 10반 2학년 10반이 어디요 우리애도 2학년 10반이란 말이요'라고 소리치면서. 엄마는 아직까지도 울지 않으셨다"
아버지 제삿날에도 울고, 동생이 다쳤을 때도, 초라한 모습으로 선생님을 찾아갔다 온 날에도 운 엄마가 울지 않으셨다. 작가는 프레임 밖에 서서 만화에 어떤 목소리도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림일기만으로도 무한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오세영의 작품을 평한 말 중 "투명한 리얼리즘" ― 인간형상을 포착하기 위한 최초의 장면을 투명성이라고 한다 ― 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대목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과 사회를 직시하는 냉철한 비판의식이 절묘하게 조화된 작품을 만나는 것은 음악에서건, 문학에서건, 또 다른 어떤 예술분야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장점과 함께 만화이기에 가능한 뭉클한 감동을 준다는 면에서 [부자의 그림일기]가 다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는 행운이 아닐까 한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오세영의 만화를 한 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투명한 만화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