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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flipside 2023. 5. 29. 11:59

2005/09/07 20:46

 

2002/12/26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제사가 싫다](이하천, 이프)라는 책의 후반부에는 이문열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데 그 중에 잠깐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대표작가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처럼 개운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소설을 쓰는 대신 [선택]과 같은 이야기에 매달려있다는 단호한 비판이었는데, 사라마구가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이 73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생각이 굳어진다는 이야기가 보편성을 띄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도시에 눈이 멀게 되는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해 도시-문명-인간성이 하나하나 무너져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정말 놀랍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구성과 이야기적인 재미,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갑자기 모든 사람이 눈이 멀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보고서로도 읽힐 정도로 작가는 모든 사람이 눈이 멀었을 때 나타날 사회 상황 묘사에 있어서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와 개연성 있는 행동묘사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또한 단 한 명 눈이 멀지 않은 여성을 주인공이자 관찰자로 등장시켜 작가의 희망적이며 인간적인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세 여자가 발코니에서 비를 맞으며 목욕을 하는 장면은 가장 압권으로 이 소설이 페미니즘적인 작품으로 읽힐 여지도 충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벨문학상이 생각없이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준 작품으로, 노벨상 수상작은 지루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 같다.


[서지정보]


제목 : 눈먼 자들의 도시
원제 : Blindness
지은이 : 주제 사라마구 Jose Saramago
옮긴이 : 정영목
출판사 : 해냄
발간일 : 2002년 11월
분량 : 476쪽
값 : 9,500원




p.s. 사라마구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된 1998년 이후 한동안 절판되었다가 2002년 11월에 다시 양장본으로 다시 나왔다. 다시 재출간 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번역도 충실하고 표지디자인(영어판을 그대로 가져왔지만)도 빼어난 걸작이다.


p.s. 영어판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