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03 23:46
2002년 여름에 썼던 글입니다.
요전에 친구랑, 그 친구의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와호장룡]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의 친구 왈 "그렇게 지루한 영화도 없지." 친구왈 "나도 보다 졸았어." O.O 근래에 본 영화중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 중 하나로 [와호장룡]을 꼽는 저에게는 경악할 이야기였지만 -.-; 다 타인의 취향이니 하면서 입다물고 화제를 돌렸었습니다. 물론 다 좋아하는 영화나 책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작품에 대해 개개인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겠죠.
자위대 여군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Kari Sumako의 만화 [이 녀석 그 녀석]은 그런 상반된 평가를 받을 여지가 큰 만화로 보입니다. 조금 엉성한 그림체에 비슷비슷한 주인공, 잡다한 잔글씨 대화하며 또 일본 자위대 이야기라니! 하고서 처음부터 포기할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제게 이 만화는 또 한 편의 걸작으로 다가왔습니다. 만화체는 [백귀야행]의 작가 Ichiko Ima풍이지만 좀 더 거칠다는 느낌이고, 잡다한 잔글씨는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대부분 궁시렁 거리는 말들이죠 ^^)이며, 일본 자위대 이야기이지만 배경만 일본 자위대일뿐 학교나 직장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답니다.
주인공인 아케노가 자위대에 입대한 이유는 멋진 선배가 육자(육상자위대)갔기 때문입니다(그 선배가 여성이라는 것은 곧 밝혀집니다. 하지만 아케노가 레스비언은 아닙니다 ^^). 아케노와 함께 방을 쓰는 친구 둘은 각각 카드 파산과 근육맨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위대에 입대했습니다. 아케노와 동기지만 하사관 시험을 일찍 통과한 친구 오토이누(꽃미남은 아니지만 귀여운 ^^)는 아케노를 좋아하지만 계속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계속 티격태격하고, 중사인 다치나바는 멋진 체격과 꽃미남임에도 여자에 관심이 없어 부대안에서 게이라고 소문이 납니다.
전 개인적으로 주인공도 중요하지만 다른 등장인물도 각 에피소드 마다 한 편씩 주인공을 맡아 활약해도 충분히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는 작품이 좋습니다(대표적인 예로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와 [웬만해선...]을 들고 싶군요 ^^). 그런 면에서 [이 녀석 그 녀석]의 등장인물은 모두 살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잘 짜여있어 작가의 재능에 감탄을 보내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만화 실려있는 다음과 같은 대사에 저는 깊은 공감을 표시합니다. 결혼준비 대신에 애인만들준비라고 넣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인생 설계 따윈
어차피
라면집에
붙어있는...
계절 메뉴판 신세야.
여름이 오면 붙여놨다
여름이 가면
떼어버리는
별 볼일 없는 신세
1997년 결혼준비 시작했습니다
1997년 결혼준비 그만두었습니다
1998년 결혼준비 시작했습니다
1998년 결혼준비 그만두었습니다
...
[이 녀석 그 녀석] 제3권 중에서
p.s. 완결되지도 않은채 절판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ㅠ.ㅠ 헌책방에서 다행히 3, 4권을 구했습니다. 1, 2권은 언제 구할 수 있을런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