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7 09:16
[책을 읽고 나서]
표지에 "해서는 안 될 가장 처절하고 슬픈 사랑.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달콤하지만 죄의 향기가 나는 소설"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금기시 되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딱 떠오르는 것은 남매간의 사랑? 정도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1장인 "2008년 06월 하나와 낡은 카메라"를 읽기 시작합니다. 비오는 날 "너무 오랫동안 함께 지낸 탓"에 지금까지 대화는 별로 하지 않고 "집요한 애정"만 남은 나이든 남자와 만난 주인공 하나는 약혼자 요시로와의 약속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합니다. 음 불륜의 상대와 결혼 전날 만나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인가? 하지만 이 둘은 약혼자와 만나서 인사를 나눕니다. 바로 이어지는 담담한 이야기. "구사리노 준고는 내 양아버지다. 그가 나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역시 제 상상력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_-
처음에 목차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를 거꾸로 배열한다고 해서 뭐 그렇게 큰 효과가 있으려나.. 하고 생각했지만 2008년, 2005년... 1993년까지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화자를 다르게 배열한 소설의 구성은 이 소설이 주는 묘한 느낌과 잘 어울리고,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뭔가 현재 이야기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후반부에 가면서 조금씩 풀려가고 선명해지기 때문에 끝까지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합니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다시 1장을 읽어보았는데 왜 제목이 낡은 카메라인지 알고 보게 되니 느낌이 새롭더라구요. 이야기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호불호가 당연히 갈릴 것 같고, 짙은 성애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끈적끈적함과 희미한 비린내가 나는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자신만의 체취가 강한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아서 전혀 맘에 들어하지 않을 독자도 많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몇몇 부분의 묘사에서는 "아 이런 식의 묘사로도 이런 감정을 표현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들게 하면서, 눈으로는 읽기는 하지만 본능적으로 조금 책에서 거리를 두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많지만 앞부분에 나오는 한 대목을 옮겨 적어 봅니다.
... 같은 소파에 앉아 있는 요시로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었다. 어른은 좀 무리겠지만 아이 하나 정도는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게 벌어져 있다. 요시로는 온화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하고 나는 결혼을 결심했을 때 생각했다.
이런 남자와 함께라면, 절망적으로 뒤얽히지 않고,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지도 않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불행의 그림자라고는 한 점도 없는 그의 젊음에 안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능하다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천천히 늙어가고 조금씩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그러니까 평범하면서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잔인했던 과거를 다른 색으로 칠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끈질기게 살아남으려고 했지만, 지금 이렇게, 이렇게 밝은 장소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내가 나이도록 하는 그 부분 - 본 적도 만져 본 적도 없는 혼의 부분이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썩어들어, 끝내는 죽을 듯한 느낌도 들었다. ...
[서지정보]
제목 : 내 남자
원제 : 私の男 (2008)
지은이 : 사쿠라바 가즈키[櫻庭一樹]
옮긴이 : 김난주
출판사 : 재인
발간일 : 2008년 12월
분량 : 456쪽
값 : 13,800원
p.s. 이 책에 대한 나오키상 수상 심사위원들의 호불호 모습을 번역기의 힘을 빌려 옮겨봅니다. 이 책을 좋아한 쪽이 좀 더 많았나 봅니다~ : )
이노우에 히사시 : 작가는 아마도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왕] 구조를 빌려 시간을 역행 시켜 질척질척한 이야기를 훌륭한 비극으로 소생시켰다. (作者は(たぶん)ギリシャ悲劇の「オイデプス王」の構造をかりて時間を遡行させてどろどろ劇をりっぱな悲劇に蘇生させた。)
하야시 마리코 : 나는 이 작품을 아무래도 좋아하게 될 수 없었다. 작가가 아마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주려 하고 있는 혐오감이 나의 경우 스트레이트하게 효과가 있었다. (私はこの作品をどうしても好きになれなかった。 作者がおそらく意図的に読者に与えようとしている嫌悪感が私の場合ストレートに効いたということであろう。)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