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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왜 자주 안오세요?

flipside 2023. 4. 29. 20:54

2005/09/0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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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회사를 다닐 때 자주가던 스파게티/복음밥집이 있었다. 일주일에 1번씩은 갔던 것 같은데


1.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탓인지 언제나 음식이 맛있었고
2. 주인아저씨부터 요리사, 서빙보는 분 모두 하나 같이 다 친절했고
3. 음식의 질이나 서비스에 비해서 가격이 너무 저렴했으며
4. 무엇보다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 - 자리가 다 찼는데 새로 손님이 올 경우 "금방 자리 날꺼에요"식의 말을 하지 않았다 - 씀씀이가 좋았으며
5.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른 메뉴로 바로 바꿔주는 등 작은 음식점에서 보기 드문 서비스 정신이 좋았다.(그 집의 유일한 단점은 여름에 아주 시원하지 않다는 점 ^^)


회사를 옮긴지 1년. 가끔 근처에 갔을 때 친구들이랑 1-2번 더 들른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다른 일로 오전에 그 근처에 갔다가 점심을 포장해 가려고 오랜만에 그 음식점을 다시 찾았다.


"5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음식을 기다리면서 실내를 살펴보는데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검은색 티를 유니폼처럼 입으신 것도 똑같았고, 주인아저씨의 친절함도 여전했고, 다소 덥게 느껴지는 실내도 여전했다.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안쪽에서 접시를 정리하고 계시던 요리사 아저씨가 내게 묻는다.


"요즘에는 왜 자주 안오세요?"


요리사 아저씨가 건내준 말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나를 기억해 주고 있다는 점이 우선 좋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지금까지 이곳에 왜 자주 못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 너무 기뻤다. 그냥 뜬금없이 주저리 주저리 내가 이곳에 못온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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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온라인에서 개인화를 하고 CRM을 도입해서 맞춤서비스를 한다고 해도 오프라인에서 느껴지는 이런 느낌을 그대로 살려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말을 건네는 타이밍, 말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늬앙스, 그리고 내 대답과 그에 대한 반응.


일반적으로 개인화를 이야기할 때는 이런 눈에 보이지 않고, 계량화되기 어려워 지표로도 잡히지 않는 부분은 무시되게 된다. 너랑 비슷한 사람들이 이랬어... 너 지난번에 이렇게 한 거 보니 이것도 좋아할 것 같은데...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했어... 등등 여기에는 "내가 너를 기억해주고 있어"(요즘에는 왜 자주 안오세요)라는 의도는 드러나 있지만 그것은 일방적으로 내가 전달 받는데 그친다. "저 회사를 옮겨서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그런 내 생각에는 관심도 없다. 그쪽이 나를 위해 맞춤 서비스를 할 때 필요한 것은 내 직접적인 생각이 아니라 단지 내 행동 패턴뿐이다.


물론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에서의 개인화는 그 자체가 이런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을 받는 분이 "요즘에는 왜 자주 안오세요?"라는 질문을 던질 때(정말 그런 경우가 있을지도 의심스럽지만) 그것은 내가 온라인에 어떤 사이트에 방문해서 로그인해서 보게되는 "OOO님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라는 메시지를 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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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과 손님의 관계를 정의하면 손님은 돈을 내고 주인은 음식을 파는 것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개입된 모든 일이 그렇든 이러한 관계 속에서 1 + 1 = 2가 아니라 1 + 1= 3이 될 수도 있다. 손님이 단골이 되고, 그 집이 그냥 음식점이 아니라 단골집이 되면 이야기는 원래와 아주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자주 가고 좋아하던 음식점이 없어지게 되면 그건 수 없이 많은 식당들이 창업을 하고 폐업을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그냥 식당 하나가 또 망했군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이 문을 닫은 것이 된다.


나는 요리사 아저씨의 "요즘에는 왜 자주 안오세요?"라는 질문에 대해 "사실은 저도 자주 오고 싶어요. 저 여기 음식 너무 좋은데 회사가 사업부를 정리하는 바람에 갑자기 옮기게 되었어요. 옮긴 회사가 여기서 가깝지가 않고 저도 이 근처에 사는게 아니라 오고 싶어도 자주 못와요. 하지만 종종 이 근처 올때 마다 꼭 들를께요. 이곳 음식 너무 맛있고 모두들 너무 친절하셔서 좋아요."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달랑 "회사를 옮겨서요."라고만 대답했다. 하지만 내 대답, 말투와 표정 속에서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감정을 조금은 느꼈을 거라고 믿는다. 친한 친구들의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만큼이나 그 음식점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