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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 권고사직, 구조조정, 정리해고, 명예퇴직

flipside 2023. 4. 22. 21:07

2004/07/1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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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말이 그 말이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입장에서는 아마 다 다른뜻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어떤 말을 들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전달하는 입장에서도 알고 받아들이는 쪽도 알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랄까? 뭐 그런 것을 서로 지킨다는 명분아래 이런 복잡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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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회사를 두 곳 다니면서 "희망퇴직, 권고사직, 구조조정, 정리해고, 명예퇴직"을 4번 겪어 봤다.

 

첫번째. 갑작스럽게 위에서 직원 2명을 그만두라는 "권고사직" 조치를 내렸다. 이유는? 일은 잘 하지만 예의가 없다나... 참.. 살다보니 별 이유로 다 그만두게 하는군. 하는 생각을 했다. 밉보이면 짤리는것이라는 말이 "권고사직"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니 참 그럴싸해 보였다. 노조가 없는 회사라 직원들이 다 서명하고 의사를 전달했지만 결국 2분은 그만두셨다. 나중에 해당 "권고사직"을 지시한 윗분은 사직하시고, 2분은 복직하셨지만, 어쨌든 내가 처음 겪은 일이라는 점에서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나는 그 결정이 공표된 당일, 내 직속상사였던 대리님이 저녁에 술을 드시고 내일 같이 모여서 이야기 하자며 전화하신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두번째. 같은 회사의 일이다. 회사의 사정이 않좋아져서 월급을 제때 주기 힘든 상황이 되어서 "희망퇴직"을 받았다. 말그래도 "희망퇴직"이지만, "희망퇴직"을 하지 않고 "해고"당하게 되면 그나마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에 몇몇 분이 그만 두셨다. 떠나가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 모두 어느쪽이 낫다, 덜하다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안하지만 근근히 남아서 월급을 받는 것과 갑작스레 고용시장으로 나가게되는 두 상황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세번째. 역시 같은 회사의 일이다. 이 때는 나도 그만 두었다. 위의 "희망퇴직"을 통해 근근히 버텨오던 회사가 더 어려워졌다. 이번에 안나가면 중간에 나가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되었고, 거기다가 내가 하던 일은 축소되고 다른 방향으로 회사의 목표/주요업무가 설정되었다. 이번에는 지난번 보다 못한 "희망퇴직"조건이 제시되었지만, 깔끔하게 나갈 수 있다는 측면 - 이런 기회가 아닐 경우 그만 두면 사장님은 배신자 취급을 했었다 - 이 있었기에 더 생각할 것 없이 그만 두었다.

 

네번째. 옮긴 회사의 현재 상황이다. 이전 회사보다 일은 많지만 여러가지 면으로 좋았고, 큰 규모였기 때문에, 또 경영진의 의지를 믿었지만 시장상황과 경영적 판단에 의해 "희망퇴직"이 시행되었다. 내가 처음 당했다면 어찌할까 고민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당연히 그만둔다는 전제 아래 생각이 흘러가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이후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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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망퇴직, 권고사직, 구조조정, 정리해고, 명예퇴직" 제도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위에서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고, 뉴스나 책을 통해서만 듣고 본 이야기이지만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살아난 회사(한국전기초자나 닛산자동차, IBM)도 있는 것을 보면, 구조조정이 매우 큰 효과가 있는 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가장 가슴아파 하는 것은, "희망퇴직, 권고사직, 구조조정, 정리해고, 명예퇴직"으로 인해서 그동안 그/이 회사에서 진행했던, 말했던, 썼던, 요구했던, 협조를 구했던 모든 사항이 다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생각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좋게 좋게 지낼껄 그랬지? 하는 후회. 일 잘되는 것 하나에만 지나치게 집중했던 바보같은 내모습. 이제는 뭐였는지도 잘 모르겠는 일에 매달려 잊고 지냈던 것들. 등등... 물론 죽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하루 하루 살기가 어려운 것처럼, 회사에서 짤릴 것을 대비해서 업무에 임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일을 당할 때 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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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을 보다보면(참으로 적절하게도 "희망퇴직" 이야기를 들은 오늘 아침에는 철저하게 기업경영의 입장에서 고용인을 바라본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책을 읽었다.) 성심성의껏, 자기일처럼, 활기차게 일하는 직원을 구하기란 좀처럼 어렵다는 이야기를 읽게 된다. 다 "희망퇴직, 권고사직, 구조조정, 정리해고, 명예퇴직"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을 뽑을때, "희망퇴직, 권고사직, 구조조정, 정리해고, 명예퇴직" 할 때 고려했으면 좋겠다. 물론 이건 단지 경영진에 대한 "희망"사항이며 "권고"사항이다.

 

 

p.s. 한국전기초자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서두칠, 김영사)를 닛산자동차의 성공기에 대해서는 [르네상스](카를로스 곤, 해냄)를, IBM의 대규모 정리해고와 사업장 축소가 가져온 이후 번영에 대해서는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루 거스너, 북앤북스)를 참조하면 좋다. 책 3권 모두 읽은 시간, 책값이 아깝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