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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고유의 표기 원칙에 대한 창비의 글

flipside 2023. 5. 9. 19:57

2011/12/14 16:35

 

계간 [창작과 비평]에 이딸리아는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라는 제목으로 창비 인문사회출판부장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평소부터 늘 창비 책을 읽을 때 마다 걸리던 부분이었고, 별달리 창비의 입장을 정확히 알 길이 없었던 터였기 때문에 반가웠습니다.(창비 책을 많이 안 읽었지만 책에 이런 기준을 소상하게 소개하거나 별도로 찾아볼 곳을 알려준 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창비 표기법과 외래어표기법의 두드러진 차이는 경음(된소리)의 인정 여부이고, 현재 외래어표기법의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은 영어 표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 외의 언어에는 원음에 가까운 표기가 아니고 이런 점이 다분히 영어중심적 발상이기 때문에 별도의 창비 표기법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 글만 보면 영어 표기에는 별도 창비 표기법이 없는 것 같지만 섹스-쎅스 / 메시지-메쎄지 / 서비스-써비스 / 실루엣 - 씰루엣 / 샌프란시스코-쌘프란시쓰코 와 같은 창비 표기법이 있고, 일본어의 장음을 살린 도쿄-토오쿄오 도 있는 것을 보면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창비 표기법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완전하게 그 창비의 고집스러움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 스타일은 스따일이 아니냐는 고종석의 예전 물음에 대한 답도 아니고 이래저래 창비도 열린책들처럼 내부 편집지침을 별도 책으로 만들어 공개하면 좋겠어요.


본문에 "한글은 외국어 원음에 아주 가까이 표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지금은 사라져버린 자모까지 복원한다면 원음 모사 가능성은 몇배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외국어를 100퍼센트 똑같이 모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하나하나의 단어를 매우 정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없어진 자모를 부활시키거나 엄청나게 복잡한 규정을 만들어가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라고 하는 것은 과잉이다. 그런데 우리말이 지닌 가능성을 십분 살려 외국어를 원음에 가깝게 드러내면서 우리말 규범에도 맞게 표기해주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 있는데, 제게는 오렌지를 어륀지라는 하는 것이나 서비스를 써비스라고 하는 것 모두 과잉처럼 보입니다.


합당한 법을 만드는데 이바지하려고 한다는 창비의 순수한 의도는 알겠지만 창비 책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 창비 표기법을 만날때마다 가독성을 포기하는 독자의 입장은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관용화가 안되어 원음에 가깝게 쓰지 않으면 식별이 어려운 ‘외래어’나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를 표기할 경우에 창비식 표기법은 더욱 긴요해진다"는 말에서 어떤 단어는 관용화가 되었고 어떤 단어는 관용화가 안되었는지에 대한 창비 편집부와 저와의 간격이 아직은 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