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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예술성과 인간성

flipside 2023. 5. 9. 20:09

2004/09/09 23:19

 

| 훌륭한 작품을 써내는 문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간성이나 인간관계가 좋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분리되었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여기서도 그런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지적으로 훌륭한 것과 일상을 잘 공유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 아닐까요? |


먼저 예술가 창작 집단과 지식인 집단, 학문 생산 집단의 일상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세미나나 학문은 지구력이 필요한 거잖아요.
  일상을 공유하는 문제는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육의 문제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연구실 활동을 해보면, 남을 배려하고 관계를 만드는 능력을 훈련받지 못한 것이 교육의 한계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더라구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 열심히 하면 되고, 좋은 대학 다니면서 가족관계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남한테 칭찬받고 배려를 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학벌이 좋을수록 더 그렇죠. 천성적으로 타고나지 않는 한, 훈련이 안 되기 때문에 남을 배려해야 하는 관계에 쉽게 적응을 못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연구실에 들어오면 불면해하는 게 역력하고 금방 표시가 나요. 그래서 일상을 공유한다는 게 놀라운 일입니다. 속이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속여봐야 금방 몸으로 아니까.


| 결국 일상의 공유는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을까요? |


그렇죠. 문제는 낡은 습속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인위적인 이념이 아니라 생활 안에서 그것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얼마나 삶의 능력을 키워주는가가 중요하죠. 연구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그것이 지금 제가 '일상'이라는 문제로 고민하는 점입니다.
  앞서 얘기한 학연이나 성차별은 노력 없이도 벗어날 수 있는데, 정작 그 다음부터가 싸움의 시작이죠. 그 다음부터 개인의 능력들, 신체적인 능력이나 습관 등 여러 가지 것들을 가지고 스스로 변신해 나가지 않으면 관계가 고착되거나 계속 어그러집니다. 처음에 좋았던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건 없어요. 만약 계속 이어진다면 그건 아주 자족적인 서클이 된다는 얘기지요. 그때부터 일상의 혁명, 일상과의 혁명이 시작되는 겁니다.


고미숙과 조희정의 인터뷰 "우정의 교육과 유목적 지식 중에서"



[인텔리겐차 : '지금, 여기' 우리 지식인의 새로운 길찾기], 퍼슨웹 기획/집필, 장석만·고미숙·윤해동·김동춘, 푸른역사, 2002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꾸리고 있는 고미숙의 연구실 운영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다. 나도 매번 질문에 부딫일때 마다 딱히 어떻게 답해야하나... 생각했던 것인데 의외로 대답이 명쾌해서 밑줄을 그었다. 역시 문제는 자신의 자각과 노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