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02 23:04
내가 디디고 선, 그야말로 단단하다고 굳게 믿었던 대지가 그렇게도 간단하게 무너져버릴 살얼음이었다는 건 까맣게 몰랐었다. 그러나 얼음이 깨지면서 빠져든 물 밑에서 이제 나는 꼼짝없이 얼어죽는구나 했더니, 뜻밖에도 거기에는 '남아도는 시간' 이라는 이름의 뜨뜻미지근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 흥건히 누워서 지내는 일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편안하고 아늑했다. 더구나 나는 그 밑바닥을 박차고 솟아오를 어떤 동기도, 어떤 목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플라나리아] 중 "네이키드 Natked", 야마모토 후미오, 양윤옥 옮김, 창해, 2005
[연애중독]을 보고 재능있는 작가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공감가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인지는 잘 몰랐다. [플라나리아]에 묶인 단편 5편 중 가장 따뜻하도 한 번 더 읽게된 것은 "사랑 있는 내일"이었지만 밑줄은 바로 윗부분에 긋게 되었다. 실직으로 "남아 도는 시간" 이름의 뜨뜻미지근한 물을 2번 잠깐씩 맛 본 나는 "돈"이라는 밑바닥을 박차고 오를 동기가 있었지만 만약 내가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돈도 어느 정도 있었다면 같은 생활패턴을 반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오키상에 대한 신뢰가 5cm 더 두터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