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18 13:06
... 제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옷에 집착하는가 하면 의복, 패션이란 자신을 본래 이랬으면 하는 이상에 한없이 근접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나름의 이유에서, 실제로 이룰 수는 없지만 되고 싶은 자신, 미래에는 이랬으면 하는 또 하나의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은 살아가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남들이 내리는 평가가 결국은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남들이 부여한 지금의 이미지를 긍정해도 되는 걸까요? 당신이라는 인간의 존재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당신이 아닐까요. 마음에 드는 옷을 걸치고 있으면 잠시나마 정직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던가요?
정장을 입었더니 나도 모르게 말까지 정중하게 나오더라는 얘기를 자조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지만, 정장을 입고 자기도 모르게 말투가 정중해지는 사람은 원래 정중한 기질과 성질을 지닌 사람입니다. 근본부터가 남을 깔보는 사람은 정장을 입어도 본래 남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저도 모르게 정중한 말씨를 쓰게 되는 일이 없는 겁니다.
진실된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진실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의복, 패션을 구한다. 그리고 고난 끝에 자신을 얽어매는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분신과 같은 의복을 몸에 걸쳤다면, 입기를 선택했다면, 비로소 처음으로 긍지라는 것에 눈을 뜰 것입니다. 내가 그리는 소녀들은 모두 이렇게 의복과 패션에서 긍지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긍지를 가진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비비안은 너에게 뭐지?"
"아마도, 긍지."
치졸하더라고 제가 당신에게 이 두 편의 다른 (그러나 옷 이야기가 지겨울 정도로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긍지입니다. ...
[미싱]의 작가의 말 중에서, 다케모토 노바라,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2006
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집. 작가의 말이 주는 울림도 강하다. 작가의 말에 옷이야기가 나오지만 책제목이기도한 "미싱"은 재봉틀이 아니니 참고하시라 ^^
p.s. 원서 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