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27 14:16
나는 어릴 때부터 검인지에 흥미가 있어서, 여러 가지 책의 뒤쪽을 펴고는 종이 디자인이나 찍힌 도장의 글자를 보고 즐거워했습니다. 도장 찍는 법도 꼼꼼하게 정중앙에 똑바로 찍혀 있는 것, 비스듬한 것, 종이 가장자리에 가까운 것, 인주를 잘 묻히지 않아서 반쯤 희미해져 있는 것 등 제각각이었습니다. 알맹이도 표지도 모두 인쇄, 제본도 기계로 하는 오늘날 책 속에 이 부분만 한 권 한 권 손으로 작업하기에, 개성이 묻어있는 점에 마음이 끌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내 도장을 찍은 책을 만들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검인은 그 특성상 비교적 짧은 일수에 많이 찍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귀찮다고 하면 귀찮은 시스템입니다. 출판하는 쪽도 검인을 위해 필요한 일손이나 시간을 무시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폐지된 게 당연할 지도 모르게지만, 서운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고양이는 알고 있다], 니키 에츠코, 한희선 옮김, 시공사, 2006
빨간 도장이 찍인 인지에서 "지은이와 협의하여 인지는 생략합니다."라는 문구로 대체되더니, 아예 요즘에는 이런 문구 없는 책들을 볼 수 있더군요. 뭔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구절이라 옮겨적어 봤습니다.
p.s. 주객이 전도된 것 같지만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흥미진진한 사건전개와 정교한 트릭과 반전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낮추신다면 따뜻한 추리소설 한 권을 만나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합본 원서 표지~

p.s. 추리소설속에 고양이에 대한 묘사가 있는 부분만 발췌해 분석한 일본 사이트가 있어 링크를 걸어 둡니다. ^^
http://www.osaka-kyoiku.ac.jp/~kokugo/nonami/99soturon/miyamoto/3sh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