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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쑹렌, 내려와. 쑹렌, 내려와.

flipside 2023. 5. 11. 21:26

2006/12/04 20:45

 

... 쑹렌은 우물가로 걸어갔다. 그녀의 몸은 꿈속의 길을 걷는듯 가볍디 가벼웠다. 무슨 식물 썩는 냄새가 우물 사방에 가득했다. 쑹렌은 땅에서 자등 이파리를 주워 살펴본 뒤, 우물 속에 그것을 버렸다. 그녀는 이파리가 마치 장식품인 양 짙푸른 고인 물 위에 떠서 자신의 그림자를 덮고 있는 것을 보았다. 뜻밖에도 그녀는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쑹렌은 우물을 한 바퀴 돌았지만 끝내 자신을 볼 수 있는 각도를 찾지 못했다. 그녀는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등 잎 한 장이 설마 이럴 수가. 정오의 햇빛이 마른 우물 속에서 뛰놀며 한 점 한 점 흰 빛으로 변했고, 쑹렌은 문득 손, 어떤 손이 잎으로 자신의 눈을 덮는 무시무시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보니 정말 희고 축축한 손이 깊은 우물 바닥에서 솟아올라 눈을 가리는 듯 했다. 쑹렌은 소스라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손! 손!"
그녀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몸 전체가 우물에 찰싹 달라붙은 것처럼 마음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쑹렌은 자신이 바람에 꺾인 꽃 같다고 느끼며 힘없이 몸을 숙여 우물 속을 응시했다. 또다시 현기증이 닥쳤고, 그녀는 우물물이 요란하게 끊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들릴 듯 말 듯 희미한 목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고막을 파고들었다. 쑹렌, 내려와. 쑹렌, 내려와. ...



"처첩성군"중에서, [이혼 지침서], 쑤퉁, 김택규 옮김, 아고라, 2006




현대 중국작가의 책으로는 거의 처음 읽은 소설. 영화 [홍등]의 원작인 "처첩성군"과 표제작 "이혼 지침서", "등불 세 개" 이렇게 세 작품이 실려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놓힐 수 없이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첩성군"이 제일 좋았다. 앞으로도 종종 현대 중국소설을 읽게 될 것 같은 느낌 ^^



p.s. 저자 쑤퉁의 한자이름은 蘇童(소동)이며 영문표기는 Sutong / Su Tong이다. 쑤퉁 아저씨 사진 ^^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