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07 10:10
... 당신은 아름다움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거침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거침없음은 젊음의 표징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이가 들면 거침없기가 어렵고, 나이가 들지 않을 때는 거침없지 않기가 어렵다. 나이가 들면 아름답기가 어렵고 나이가 들지 않을 때는 아름답지 않기가 어렵다. 문든 당신은 서른일곱 살을 앞두고 있다는 걸 상기했다. 평균 수명이 일흔을 훌쩍 넘긴 현실을 감안하면 서른일곱은 그다지 많은 나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젊다고 할 수도 없었다. 가령 당신은 방파제 위에 청동빛 피부를 가진 청년들처럼 누가 보든 말든 거리낌 없이 여자를 끌어안고 키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설령 새로운 사랑이 찾아와서 사랑의 자장 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서른일곱 살의 사랑은 불가피하게 은밀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마무리 짓는 당신의 생각을 당신은 연민에 가득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젊음이나 늙음에 대한 인식이 지각적이고 또 상대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서른일곱이라는 자연의 나이와 상관없이 젊음의 거침없음의 아름다움을 그저 부러워하는 당신은 이미 젊다고 할 수 없었다. 젊지 않다면 늙은 것이다. 서른일곱 늙은이라니. 그런데 당신은 정말로 늙었는가. 그 질문에 그렇다고 선뜻 대답하기가 또 쉽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포기할 수 없는 목록들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었다. 써먹지 못한 패를 버리지도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즈음의 당신의 심정은 초조감과 의기소침에 지배되어 있는 상태였다. ...
[욕조가 놓인 방], 이승우, 작가정신, 2006
오랜만에 읽은 이승우 소설이자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 주말에 사람들과 나이에 대한 이야기("우리 마흔이 멀지 않았어." / "악! 말도 안돼.ㅠㅠ") 를 해서 그런지 서른일곱 이라는 나이가 언급된 부분에 눈이 갔습니다. 내가 아직 포기할 수 없는 목록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더군요.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