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15 00:20
내가 일을 떠나 개인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본격적으로 관여하여 그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던 것은 1999년에 애완견이 뇌하수체종양으로 쿠싱 증후군이라는 난치병에 걸렸을 때부터이다. 비록 개이기는 하지만 9년 동안 거의 가족과 다름없이 생활했기 때문에 마음이 무척 착잡했다.
그 당시는 국내의 웹 콘텐츠가 지금처럼 충실하지 않아 개의 쿠싱 증후군을 치료하는 방법 같은 특수한 커뮤니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미국의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이 병에 걸린 애완견 주인들의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날마다 치료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놓고 전문적인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하루에 몇 십 통이나 배달되는 메일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온라인 사전으로 의학 용어를 조사하여 병을 진단하는 방법과 표준적인 치료법을 파악해 가며 기초적인 지식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미국, 영국 같은 영어권뿐만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아르헨티나까지 세계적인 규모의 회원들이 날마다 각 지역의 치료법과 특수한 혈액 검사의 수치를 읽는 법에 관하야 전문 용어를 섞어 활발하게 토론하는 내용을 읽는 사이에 이 병에 관한 나의 지식이 비약적으로 늘어갔다.
거기에서 얻는 정보와 개업의가 제시해 준 치료법을 조회하니 개업의의 치료법은 시대에 뒤떨어져 위험하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후 일본의 웹 사이트를 중심으로 검색하다가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내분비계열 전문 수의사가 취미로 개설해 놓은 웹 사이트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이 병에 관해사는 권위자일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직접 메일을 보내 진찰을 부탁하니 흔쾌히 승낙했디.
그로부터 메일링 리스트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강력한 지원자 역할을 다해 주었다. 몇 년 뒤 미국과 일본에서 표준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치료법이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다른 치료법이 도입되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나는 주저하면서 대학병원 수의사에게 이 사실에 대하여 상담하니 그 수의사는 서둘러 정보를 수집하고 영국에서 실시되는 치료법을 채택해 주었다.
일본의 국립대학 병원 의사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처럼 겸손하게 의견을 받아들여 준 선생님의 놀라운 유연성에는 지금도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세계적인 규모로 지식을 공유하는 사회가 생겨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또 메일링 리스트는 불안해 하는 애완견 주인을 위해서 정신적으로 힘을 보태는 등 다양한 국면에서 경험을 함께 나누는 장도 되었다. 나 역시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일본에 유학한 적이 있다는 미국인 회원에게서 개인 메일을 받고 지금까지 개인적인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치료법에 관하여 생각이 다른 사람, 그것도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몇 십 통의 메일을 주고받으며 교제하기 때문에 종종 과도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모임으로써 생기는 부정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진수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인터넷이 전 세계적으로 고루 퍼진 지금 "세계가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하고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어수룩한 낙관론자라고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경험으로 낙관적인 견해를 결코 버리지 못할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이 행하는 선과 악이 모두 존재한다. 그러므로 결과 과대평가나 과소평가하지 말고 인간 사회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어떤 특수한 주제라도 일반인과 전문가가 지식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진 현대 사회의 구조 변화는 순전히 온라인 커뮤니티 덕문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개인이 자신의 생활권 안에서 사람과 만나고 문헌을 모으는 일만으로는 우리 지식과 경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국내에도 이런 커뮤니티 사이트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아 천식을 앓는 아이의 병과 육아에 관란 아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개설한 사람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로 발전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모를 강력하게 지원한다.(맞벌이 부부 자녀의 천식에 즉효! 생활 기술 http://happyfu-fu.com/sensoku)
블로그의 유행이 일과성으로 끝날 것이라 예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단 개인이 정보를 내보 낼 수 있는 미디어의 존재를 안 이상 그 미디어가 블로그라는 형식을 띄지 않더라도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Web 2.0 Marketing Book]중 칼럼 "온라인 커뮤니티가 바꾸는 사회", 다나카 아유미, 김혜숙 옮김, 길벗, 2007
너무 길다 싶지만 어디를 잘라서 옮기기가 뭐해서 전문을 밑줄로 그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처음 인터넷을 하면서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한 기억이 떠올랐거든요. 처음 PC통신의 TCP/IP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해서 뉴스그룹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alt.OO로 시작하는 뉴스그룹 리스트를 다운 받고 그 많은 글들에 놀라워 했었습니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주제에 똑같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전 세계에 이렇게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구요. 인터넷 접속이 훨씬 편리해진 지금은 불편하고 어렵던 예전과 달리 전세계를 연결해주는 인터넷이라는 의미보다 그냥 습관처럼 국내에 한정된 상태로 인터넷을 쓰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듭니다. ^^
p.s. Web2.0 붐을 타고 제목이 정해진 것 같지만, 실제 책 내용은 일반적인 웹을 이용한 마케팅에 대한 실무참고서입니다. 웹이란 무엇이고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실제 마케팅에 써먹을까?하는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적합한 책으로 웹2.0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되는 것은 아니니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