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3 08:23
... 아직 이름을 밝힐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나에게도 사회 안전망이 있었다. 그런데 국가가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단체나 종교단체도 아니었다. 나의 '재활'을 도와준 사회 안전망은 우정이었다. 문단의 선배와 친구 몇몇이 내 거지 근성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치유해 주었다. 그들은 "뭐 먹고 사느냐"고 묻지 않고 돈을 갖다 주었다. 막무가내였다. 그동안의 인간관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선물'이었는데, 그 인간관계는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또 선생님이나 선배, 친구가 관리한 인맥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철없는 소년'이었을 뿐이다. 그런 내가 그들에게서 받은 생활비는 실로 적지 않은 액수였다.
우정은 관심, 연민, 나눔, 공생, 평화를 이어주는 그물코이다. 우정이 위력적인 까닭은 우정이 '기억의 공유'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우정의 부피는 둘이 함께한 시간에 비례한다. 기억을 서로 공유하는 사람은 얼마나 편안한다. 자본주의가 우정을 공략하지 못하는 까닭은 저 기억을 상품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 기억을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공포가 나를 디아스포라적 인간형으로 '개조'하는 동안, 나는 우정이라는, 그동안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 안전망'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선생님과 선배, 그리고 친구들의 관심과 배려가 없었다면, 나는 경제적 공포의 끝에서 대단히 황폐해졌을 것이다. ...
"실업의 추억"중에서, 이문재, [녹색평론] 2007년 05월/06월호
시인이자 [시사저널] 기자로 일했던 - 아래 읽었던 [기자가 된다는 것]에도 이문재의 글이 실려 있다~ - 이문재가 2005년 05월 31일 명예퇴직하고 247개월 동안의 월급생활을 그만 둔 후의 일을 쓴 에세이. 처음에 실업자로 '타자의 시선'을 느꼈으며, 자기 안의 '거지 근성'을 발견한 후 실업자들이 흔히 겪는 "명함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것인지도 새삼 깨"닫고 "날마다 새롭게 태어났다." 글에서는 "어떤 독자들은 '비정규직의 분노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리실지도 모르겠다"고 걱정을 했지만. 이름이 알려진 이가 쓴 정규직 → 명예퇴직 → 실업자 → 비정규직 → 계약직으로 변화하는 이야기를 본 적이 없는 탓에 이번 호 [녹색평론]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다.
p.s. 걱정스러운 것은 "자본주의가 우정을 공략하지 못하는 까닭은 저 기억을 상품화할 수 없을까"라는 말이 계속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