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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알고 보니 나는 유혹당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flipside 2023. 5. 13. 11:29

2007/08/18 18:01

 

... 우리가 '난잡한 성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전의 나를 항상 괴롭혔다. 비인간적인 사랑은 사교적인 교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명의 성과 중 하나는 삶에 가치를 두는 것, 즉 타인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혹은 성실한 사랑이란 부르주아 계층의 바보짓을 불필요하게 억누르는 것일까?
  타인 혹은 우리가 타인의 일부라고 부르는 것이 인간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다. 같은 몸짓이나 말, 비명이 상처받은 내력이나 치유되는 마음을 보여 주기도 했다. 환상의 거품이 괴롭힘을 당하자(나는 환상이 편견과 열중의 치명적인 형태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종류의 개방을 경험했다. 그것은 현실로 들어가는 다른 종류의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욕망 때문에 타인에게 깊이 빠져 들지 않으려고 달아났다. 사실 내게 돈을 주었던 여자와 헤어진 것도, 내 감정 속에서 섹스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중독이나 부도덕한 행위가 아니라 적어도 쾌락이라는 점은 명확했다. 쾌락은 사람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어디든 데려간다. 이런 희열에 취하고 신비로울정도로 강렬해진다 해도, 더 이상한 일이 생기면 탐닉은 계속되지 않고 현실에서 꿈이 깨져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나는 유혹당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



[바디] 중에서, 하니프 쿠레이시, 공경희 옮김, 2007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이야기를 후회가 아니라 현실로 바꿀 수 있다면? "살아온 세월 동안의 현명함과 성숙함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싱싱한 육체에 내 뇌를 이식할 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제안"에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이야기 줄거리만 보면 상당히 흥미롭고 자극적인 이야기 전개가 기대되지만 막상 위와 같이 밑줄 친 부분처럼 삶에 대한 의문과 고민들을 요소 요소에 빼놓고 있지 않은 탓에 읽는 속도가 맘처럼 빨라지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으면서도 심각하게 읽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다 읽고 나서 찬찬히 프로필을 보고 알았는데, 작가인 하니프 쿠레이시는 파키스탄 2세로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My Beautiful Laundrette]나 [정사 Intimacy](국내 번역서 [친밀감]), [마더 The Mother]의 원작이 된 작품을 쓴 작가로 현재 영국에서 주목받는 작가더군요. 앞으로 열림원에서 쿠레이시 소설을 계속 낼 예정인 것 같아서 나오면 찾아볼 생각입니다.




p.s. 원서표지와 터키어판, 국내판 표지. 터키어판 표지는 너무 직접적이고 국내판 표지는 깔끔하지만 좀 모호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p.s.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남자이고 새로 입은(?) 몸 역시 남자라서, 만약 여성이 주인공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데 찾아보니 그런 질문이 있었네요.


How do you think getting a new body might have been different for a woman his age?
I wouldn't know. I don't understand anything about women whatsoever. [출처 : The Nerve Interview: Hanif Kureishi by Emily M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