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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나이 마흔이 되면 죽을 생각이다

flipside 2023. 5. 14. 10:54

2007/11/03 22:55 

 

나이 마흔이 되면 죽을 생각이다. 이제 서른여덟하고도 두 달을 살았으니 이태도 남지 않았다. 방금 틀 안에 부은 콘크리트가 점점 굳어 가듯 내 결심도 하루하루 물기와 거품이 빠지며 굳어 가고 있다. 죽기로 작정을 한 뒤 마음이 편안해졌다. 전보다 더 밝고, 그리고 꿋꿋하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이다. 하지만 내겐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한 목적 따윈 전혀 없다. 필요도 없다. ...


... 어떤 기억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증식한다.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세부적인 내용은 윤곽이 흐려지고 애매해진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 그 명암이 점점 뚜렷해진다. 나는 희미해진 세부를 되살리려는 게 아니다. 증식하는 기억에 더욱 힘을 보태 해방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죽이러 간다.



[다크], 기리노 나쓰오, 권일영 옮김, 비채, 2007




[다크]의 1장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 1장의 제목도 "나이 마흔이 되면 죽을 생각이다".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가에 가슴을 졸이고 곳곳에 숨겨져 있는 뜻밖의 전개와 선택에 놀라다 보니 결말에 이르렀네요. 책을 읽고 있는 중에 [판타스틱] 11월호에 실린 번역자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경우는 독자가 금세 읽듯이 작업할 때도 빠르죠. 하지만 기리노 나츠오 같은 경우는 쉽지 않습니다. [다크] 1장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1장은 완벽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문장을 옮기기는 힘듭니다. 해석은 되는데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 이 상황에 더 근접할까 이런 문제로 오래 고민했습니다. ..." 적극 공감입니다. 특히 1장은 정말 대단대단... 다른 기리노 나츠오 작품이 마음에 드셨다면 당연히 이 작품도 마음에 드실 것 같네요. 적극 추천합니다.




p.s. 번역본 표지와 원서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