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1 20:59
... 질은 방의 벽에 바싹 붙여 놓여 있는 밀짚을 넣은 매트에 눈길을 던졌다. 오늘밤 빈대들이 달려들어 피를 빨 거라는 사실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배를 든든히 채우고 잠을 청할 수는 있을 터였다. 식사는 밖에 나가서 할 작정이었다. 이 여관에서 제공하는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그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손님 하나가 빵 조각을 씹다가 이빨이 부서지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진흙을 털어내기 위해 장화를 한 짝씩 손에 들고 탁탁 턴 뒤, 명반과 양기름을 섞은 액체를 장화 표면에 발랐다. 그런 다음 식초를 탄 물에 적신 헝겊으로 공을 들여 얼굴을 닦았다. 비를 맞은 탓에 그의 옷은 온통 젖어 있었다. 그는 화로 앞으로 가서 젖은 옷을 불에 쬐어 말린 뒤, 새 셔츠와 퍼스티언(무명을 섞어서 짠 마직물)으로 만든 파란색 겉옷으로 갈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왕의 밀사는 어떤 모습으로 다녀야 하는 걸까? 사실 질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
[악마의 개 - 질 바욘의 수사]중에서, 파비엔 페레르, 최정수 옮김, 휴먼앤북스, 2007
무대는 앙리 4세 치하 17세기의 프랑스. 신교도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왕은 신교와 구교의 전쟁이 끝나길 기원했겠지만 여전히 양쪽 모두에게서 아직까지는 어느 편인지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왕에게 굴복하지 않은 도시 루앙의 한 성당에서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은 가톨릭 귀족이 발견됩니다. 성당 안은 여기 저기에 피가... ㄷㄷㄷ 이런 와중에 왕이 엘리자베스 1세에게 보냈던 편지 - "우리 힘을 모아 교황에게 도전해보아요!"라는 내용의 ^^ - 가 도난당하고 앙리 4세는 정치적으로 위기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우리의 주인공 질 바욘~ 그는 사건을 해결하고 그 편지를 훔쳐 달아났다고 의심 받는 형을 찾는 2가지 임무를 받고 루앙으로 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흔히 역사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들이 추리적인 요소는 좀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에 비해 [악마의 개]는 탄탄한 구조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면서 "범인은 누군인가?"라는 궁금증도 계속 불러일으켜 마지막까지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우리들은 음울한 날씨에 늘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는 질 바욘을 따라서 절망적인 상황에 부딫히기도 하고, 제멋대로 사람을 죽이는 귀족의 횡포에 함께 화를 내고, 아이 잃은 아버지의 슬픔에 함께 공감하며, 그의 수사(저는 "질 바욘의 수사"라는 제목을 보고 질 바욘이라는 지방의 修士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질 바욘이라는 사람의 搜査더군요 ^^)가 어떻게 되가는지 마음 졸이며 지켜보게 됩니다. 책 뒤표지에 보면 "열정적인 수사관 질 바욘을 다른 소설에서도 만나고 싶다."는 말이 있던데 읽으신 분들이라면 아마 대부분 그런 마음을 갖게 될 것 같네요. :-)
p.s. 밑줄 그은 부분은 작가의 묘사력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읽었던 [깨끗함과 더러움](조르주 비가렐로, 돌베개)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져 옮겨적게 되었습니다. 책에 보면 16세기 무렵 유럽 사람들은 물이 우리 몸에 좋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서 목욕을 하는 일은 의료행위화 되고 실제 청결을 유지하는 방법으로는 옷을 갈아입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위 부분을 읽으면서 그 대목을 바로 떠올렸거든요 ^.^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둘다 좋지만 책의 분위기는 번역본이 훨씬 잘 드러내고 있어요.

